[글로벌포커스]아직도 불안한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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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한파가 이미 지나간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경기의 저점 (低點) 이 원래 예상대로 올해 2분기 말께에 도달하지 않고 이미 지난해 4분기 중에 지나갔을 것이라는 등의 낙관적인 견해표명이 그 대표적인 예다.

97년 12월과 비교해 4.7% 늘어난 산업생산과 70%대에 진입한 제조업 가동률 등 몇몇 거시지표에 현혹돼 성급하게 샴페인을 터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 국가부도 직전까지 치달았던 환란 (換亂) 을 그런대로 무사히 극복해 97년말에 거의 고갈됐던 외환 보유고가 이제 5백억달러를 넘었고 환율과 이자율도 안정을 되찾았으며 국가 신용도는 투자적격 수준으로 향상되는 등 일련의 사태에 고무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지난 1년간 현정부가 불철주야 고심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할만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경제가 겨우 응급실 신세는 면했다는 것이지, 아직도 국가경제는 중환자실에서 신음하고 있어 완전회복을 기대하기는 요원한 형편이다.

산업생산의 4.7% 증가도 국제시장 가격의 호전을 경험하고 있는 반도체생산 부문을 제외하면 오히려 7.4% 감소를 보이고 있고, 제조업 가동률 상승도 재고량 조정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

지금 경제 전반에 흐르고 있는 차가운 체감경기는 우리 경제성장의 기둥인 소비.투자.수출 분야의 침체된 현상을 보다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늘어난 주원인은 해외에서 빌려온 돈과 지난 1년간의 경제활동 냉각에 따른 수입폭락으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 때문이지 우리 수출의 국제경쟁력 상승 등 한국경제의 체질개선 때문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환율과 이자율의 안정도 경제구조의 선진화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실물경제의 불황으로 인한 소비와 투자의 취약 때문이다.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등 국제신용조사기관들의 주된 초점은 해외 투자가들의 자금회수 가능성에 있으므로 내용이야 어찌됐든 외형상의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상승 자체에 더 관심을 두었지 한국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제고 등 경제의 근원적 변화 여부는 부차적 문제였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 열거하고 있는 외환보유고 상승과 환율 및 이자율 안정 등 일련의 경제지표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극도로 취약해진 실물경제를 증명하는 징표이지 한국경제의 근본적 회복신호가 아니다.

세계경제의 흐름도 최근 들어 위험요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조짐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현재의 국제금융계가 "50년만에 제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고 밝혔듯이 97년 아시아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98년 러시아를 거쳐 올해초 브라질 위기를 끝으로 완전 종식됐다고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위기의 불똥이 아르헨티나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옮기기 전에 잠깐 멈춰 서 있는 소강상태로 봐야 한다.

만약 중남미가 80년대 식의 금융위기에 다시 봉착한다면 그 여파는 분명히 아시아로 재돌입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허리띠를 동여매고 후진적인 우리 경제구조의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 정부가 완수해야 할 네가지 경제개혁과제, 즉 비대한 정부조직의 통폐합과 철저한 정부규제 철폐, 부실금융기관 정리와 금융감독기능의 현대화,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투명성 제고,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은 조금도 늦출 수 없는 국가적 사명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하고 먼저 처리했어야 할 개혁목표가 지금까지 가장 진전이 더디었음은 현정부의 실책중의 실책이다.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의 과감한 통폐합 및 기구 축소는 아직도 부처이기주의에 밀려 차일피일 시간을 끌고 있고, 새정부의 인사정책도 크게 실패했다.

국제적 현장감각이 더많은 유능한 기업인들은 제쳐놓고 정경유착의 시녀요 관치금융의 장본인들인 재경부 출신 소위 '모피아' 들을 중용함으로써 공공부문 개혁의 속전속결에 실패했고 빅딜을 포함한 기업의 구조조정과 금융기관 통폐합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공공부문을 위시해 우리 경제 전반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고실업.저성장 체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요, 세계가 지금 비웃고 있는 일본의 '잃어버린 90년대' 를 우리 자신도 앞으로 똑같이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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