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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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19일 김원기 (金元基) 노사정위원장을 통해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보따리를 모두 풀어놓았다.

그동안 노동계에서 요구해온▶노사정위 법제화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 가입▶구속 수배자의 사면 ▶구조조정의 사전 협의 등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다 내놓은 셈이다.

물론 노동계가 재벌 재산의 사회 환원이나 부실경영 책임 추궁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지 정부가 강압적으로 할 성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조치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12일 金위원장과 이기호 (李起浩) 노동부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좌초위기에 놓인 노사정위를 정상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金대통령이 노사정위원장으로부터 정례보고를 받기로 한 것도 노사정위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지표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노사정 합의사항 이행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수용, 노사정위 탈퇴의 명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뜻도 담겨있다.

정부는 최대한의 '당근' 을 제시한 만큼 노동계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가 의도한 바인 동시에 노동계의 딜레마다.

그러나 노동계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민주노총 (위원장 李甲用) 은 이날 성명을 통태 '기만' 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중단과 고용안정에 대한 노사정의 사회적 협약 등 핵심적 요구를 외면한 처사" 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사정위 탈퇴를 위한 24일의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노사정 붕괴에 따른 책임을 민주노총에 떠넘기려는 의도" 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위원장 朴仁相) 도 '함량미달' 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노총은 "고용안정과 실업대책 등 시급한 노동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알맹이 없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고 평가했다.

노사정위 법제화도 합의사항에 법적 구속력을 주지 않는다면 포장만 갖췄을 뿐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노동계는 파악한다.

양대 노총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중단돼야 노사정위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탈퇴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 일각에서는 노동계에 밀려 너무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사정위 법제화는 '옥상옥' 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노동부의 경우 노사정책에서 일부 업무의 중복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다.

법무부에서도 실업자 노조의 가입 자격에 제한은 두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실업자가 나올 경우 사회세력화돼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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