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도망자' 오잘란 터키송환에 지구촌 열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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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쿠르드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로마 공항에서 체포된 뒤 3개월여 동안 유럽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었다.

터키정부의 추적을 피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온 오잘란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 '뜨거운 감자' 였기 때문이다.

80년 이후 오잘란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던 시리아가 지난해 10월 터키의 군사행동 위협에 따라 오잘란을 추방하자 그의 신병을 받아들인 것은 러시아였다.

그러나 러시아로서도 주요 교역국중 하나인 터키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 결국 러시아도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오잘란은 그해 11월 12일 이탈리아로 입국하다 체포됐다.

이탈리아는 헌법상 사형에 직면할 수 있는 국가로의 범인 인도가 금지돼 있다.따라서 오잘란의 터키 송환을 거부했지만 역시 터키와의 외교.경제적 관계상 그를 계속 끌어 안을 수 있는 입장이 못 돼 고민끝에 지난 1월 그를 설득, 출국시켰다.

유럽에서 망명지를 찾지 못한 오잘란은 터키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그리스의 협조로 아프리카로 넘어가 케냐 주재 그리스대사관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잘란의 신병이 어떻게 터키정부의 수중에 넘어갔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불렌트 에체비트 터키 총리는 16일 "오잘란 체포는 터키가 12일간 수개국에 걸쳐 추적한 비밀 작전의 개가" 라고 설명했다.

테오도로스 판갈로스 그리스 외무장관은 16일 인도적 차원에서 케냐의 그리스 공관에 임시거처를 마련해주었으나 오잘란이 네덜란드로 갈 것을 희망, 스스로 대사관 구역을 떠났다고 밝혔다.

터키정부에 넘겨준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떠나다 잡힌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국제 외교가에서는 오잘란 처리 문제를 두고 그리스 정부관리들 사이의 전화통화 내용을 터키측이 입수, 오잘란의 소재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즉각 부인했다.

터키 법원에서 오잘란이 사형 판결을 받을 게 거의 확실시되지만 형이 집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대부분 유럽국가들이 오잘란에 대한 공정한 재판과 기소후에도 사형에 처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 정부로서도 국제적 비난 여론과 국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저항을 무릅쓰고 오잘란을 처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공은 터키로 넘어갔지만 오잘란은 역시 '뜨거운 감자' 로 남을 것 같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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