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 압승에 흥분한 ‘한국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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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일본 총선을 참관한 송영길 최고위원(오른쪽에서 둘째)이 ‘정권교대’ 문구가 인쇄된 일본 민주당의 수건을 보여주고 있다. [김형수 기자]


‘일본의 새로운 변화’.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걸 두고 31일 여의도에서 공통으로 내놓는 평가다. 이 참에 ‘가깝고도 멀었던’ 한·일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길 바라는 기대감도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허용범 대변인을 통해 “일본의 정권 교체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참”이라며 “한·일 관계도 새로운 관계로 정립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은 게 그 예다.

여야에선 “새 집권당이 된 일본 민주당은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부응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거나 “일본 국민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민주당 노영민 대변인)는 논평이 나왔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소 미묘한 대목도 있다. 여권은 여권대로, 야권은 야권대로 나름의 독법(讀法)으로 일본의 선거 결과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권 교체 환영”=이날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일본 민주당이 54년 만에 첫 정권 교체를 이룬 소식에 술렁였다. 참석자 전원이 환영사를 쏟아냈다. 정세균 대표는 “일본의 정권 교체를 환영한다. 솔직히 생각하면 부럽다”며 “30여 개월 뒤 한국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9일 일본을 찾아 선거 현장을 둘러본 송영길 최고위원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의 유세장에서 변화를 원하는 일본 국민의 열정을 목격했다”며 “우리도 집권당이 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 측도 이날 “지난 7월 20일 하토야마 대표가 ‘정 의원에게 조언을 듣고 상호관계를 돈독히 해 (한·일 간) 모든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왔다”고 공개했다. 그러곤 “하토야마 대표 측이 ‘선거 뒤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해옴에 따라 적절한 시점에 만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우리 민주당은 미국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호들갑이더니 이번 일본 민주당 승리에도 똑같다”며 "당 이름은 같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민주당이 의회에서 해머를 휘둘렀다는 얘기를 못 들어봤다”고 꼬집었다.

◆“소선거구제는 위험”=일본 민주당의 압승을 두고 여권 고위 관계자는 “역시 소선거구제는 위험한 선거”라고 말했다. 선거구마다 최다 득표자 1명씩을 뽑는 소선거구제의 특성상 일단 ‘지지 바람’이 불면 특정 정당의 싹쓸이가 가능하고 이게 급격한 변동으로 이어져 오히려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일본의 선거 결과를 근래 여권이 추진 중인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의 논거로 삼은 셈이다. 일본은 자민당의 1당 지배와 파벌정치 혁파를 명분으로 1996년 소선거구제를 도입했다.

◆“일·한의원연맹 잘 될까”=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 내 일본통 의원이 점차 줄어드는 게 우리 측의 고민이었다. 17∼18대 총선을 통해 의원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의원이 영어를 하는 의원보다 적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계기로 처지가 역전됐다. 일·한의원연맹의 핵심이랄 수 있는 모리 요시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살아남았다곤 하나 소속 정당인 자민당의 몰락으로 영향력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한의원연맹의 대다수를 차지할 민주당의 경우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이 발탁, ‘오자와 칠드런’으로 불리는 정치 신인들의 비율이 높다. “인맥과 경륜을 중시하는 양국 관계로 볼 때 불안한 재료”(한·일의원연맹 관계자)란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근래 일본 민주당 인사들과도 부쩍 친교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 격의 없이 폭탄주를 마실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고 전했다.

강찬호·고정애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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