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때 미아된 박준철군, 15년만에 아버지께 첫 세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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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에겐 설이 없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떡국도, 아빠가 사주는 설빔도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명절이 되면 "왜 나에겐 가족이 없을까" 하며 서러운 눈물을 흘리곤 했다.

네살 때인 지난 84년 미아가 된 박준철 (朴俊哲.19) 군. 아버지와 헤어져 혼자 살던 어머니를 따라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갔다 그곳에서 그만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서울 시내를 헤매던 그를 발견한 경찰은 그를 서울 소년의 집으로 보냈다.

철이 들면서 "엄마와 아빠가 나를 버렸다" 는 생각이 그의 영혼을 무겁게 했다. 말이 없는 아이로 자란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 과정이 있는 부산 소년의 집으로 옮겼고 중3 때 그곳을 뛰쳐나온 뒤 부산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朴군의 아버지 박석구 (朴錫求.42.수산가공업) 씨. 그는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소식에 2년 동안 모든 것을 팽개치다시피하며 아들을 찾아다녔다.

"지금 알고 보니 당시 준철이 수용돼 있던 서울의 보육시설에도 들렀어요. 그런데 아들을 만나지 못한 겁니다. 외국으로 입양간 것으로 생각하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어요. " 아들을 잃어버린 지 15년. 지난해 8월 朴씨는 한국복지재단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를 통하면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에서 朴씨는 아들의 기록을 찾아냈지만 아들은 이미 소년의 집을 3년 전에 뛰쳐나가 종적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때 낙담한 그에게 종합센터가 한 모피회사를 소개했다. 삼미모피가 신문광고 한켠에 미아 사진을 싣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부산 소년의 집 시절 찍은 준철군의 사진이 각 일간지에 나간 게 지난해 9월. 곧바로 "부산의 식당에서 준철이를 보았다" 는 제보가 접수됐고 아버지 朴씨는 부산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아들과 눈물로 상봉했다.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준철군은 지금 서울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일한다. 숙소도 식당이 제공하는 곳에 잡았다. 재혼한 아버지의 집이 싫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도움없이 혼자 자립하겠다는 게 그의 고집이다.

일류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인 그는 매달 받는 70만원의 월급 중 60만원씩을 꼬박꼬박 저축한다. 중3 때 그만둔 공부도 곧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13일 오전 아들이 일하는 식당을 찾은 아버지로부터 난생 처음 점퍼와 스웨터 설빔을 선물받은 준철군. 아버지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아버지.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리고, 따뜻한 떡국을 먹을 올해 설날은 그에게 생애 최고의 설날이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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