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후세인 국왕의 '큰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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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8일 CNN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 요르단의 후세인 전 국왕 장례식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공통된 의문을 갖게 됐을 법하다.

"도대체 후세인왕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요르단이 뭐 그리 대단한 나라라고…" . 후세인 국왕 사망후 24시간만에 거행된 장례식엔 전세계에서 정상급 지도자만 40여명이 모여들었다.

미국은 제럴드 포드에서부터 지미 카터.조지 부시.빌 클린턴까지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조의를 표하는 진귀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같은 세계적 추모열기는 후세인왕이 중동 군주들 가운데 드물게 분수를 알면서 균형을 지킨 '모범적' 지도자란 점에서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가 떠나간 뒤의 공백이 워낙 크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여러 차례 소개됐지만 중동평화의 중재자로서 그의 역할이 그가 숨지면서 더욱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없는 지금 중동은 장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요르단 국민의 절반 이상은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요르단 왕실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모호하다.

이스라엘과 정상적 관계를 맺고 있는 대가가 뭔지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스라엘, 북으로는 시리아, 동쪽으로는 이라크가 버티고 있다.

그 사이에서 후세인왕은 교묘한 외교술로 아무런 부존자원도 없는 척박한 상황을 타개해 왔다.

이른바 '줄타기 외교' 지만 '동냥외교' 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긴 장례행렬 속에서 각국 지도자들은 후세인 이후의 중동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동상이몽의 복잡한 계산을 했을 것 같다.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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