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 다르고 속 다른 올림픽 금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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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수가 딱 금메달 감인데~'. '어-. 조금만 더 더~!'.

수박 한조각 앞에 놓고 이런 기대와 함성으로 밤을 지새는 올빼미 시청자들이 올해도 적지 않으리라-.

▶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올림픽의 고향' 아테네에서 13일(현지시간)부터 금사냥이 시작된다.

4년간 아테네 입성만을 기다린'대한민국 전사'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금메달은 곧 개인의 명예요, 가문의 영광이다. 국민들 역시 왠지 뿌듯하고 통쾌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모두의 기쁨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렇듯 국민들의 사기를 한껏 드높이는 금메달을 돈으로 따지면 과연 얼마나 될까.

선수들이 양동이로 쏟은 땀의 결실을 돈으로 환산하는게 어찌보면 불경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

올림픽이란게 원래 '엘리트 체육' 아닌가.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키운게 우리의 대표선수들이다. 그 밑동엔 국민들이 있고, 그들이 낸 세금이 있다.

지극히 단순하게 생각하면 금메달의 값어치는 별 것 아니다. 금메달 1개엔 6g의 금이 들어 있다. 지름이 6㎝ 이상, 두께는 3㎜ 이상이지만 안은 순은이고 겉만 순금으로 도금한게 금메달이다. 굳이 원가를 따지자면 4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금메달을 딴 선수들에겐 또 다른 '부(富)'가 따라온다.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평생 매달 100만원씩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다. 소속된 체육단체로부터도 별도의 포상금을 받는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뭔가 시원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건 맞는 것 같은데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그동안 이런 쪽으로 연구가 이뤄진게 없었다.

마침 고려대 경제학과 곽승준 교수 연구팀이 최근 '올림픽 금메달의 경제적 가치'라는 논문을 발표해 관심을 끈다.

12일 오후 고려대 정경관 연구실에서 가치평가 분야를 전공한 곽교수를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새만금 사업이나 영월 동강 댐 등에서 경제성 평가를 한 이 분야의 권위자였다.

곽교수는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이 따는 금메달 1개를 돈으로 환산하면 567억1800만원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체육과학연구소가 조사했더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를 따는데 188억원이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금메달 하나를 따는데 그만큼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곽교수는 "이처럼 금메달 획득을 위한 비용이 큰데도, 국민들이 금메달로 느끼는 사회적 편익(만족도) 측정을 재려는 작업은 부족했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엘리트 체육 정책의 방향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아무튼 이런 취지로 연구를 시작했고, 복잡한 경제학 분석 방법을 동원했다(논문을 차근차근 읽었지만 너무 어려워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겠다).

일단 금메달이란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없다. 그래서 금메달을 땄을 때 국민들이 얻는 만족(효용)을 측정하려면, 금메달 획득시 국민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돈으로 가치를 재는 방법이 있다. 쉽게 말하면 대표선수가 금메달을 1개 따도록 돕기 위해 얼마를 지원할 수 있겠느냐를 조사한 것이다.

그랬더니 금메달 1개를 따는데 가구당 4471원을 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국적으로 이를 확대하면 567억원에 이른다.

188억원이라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 만족도는 더 큰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올해 여름밤 먼 아테네에서 거머쥔 금메달 1개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청량제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 연구가 올 봄부터 진행됐으니 요즘 연일 푹푹 찌는 폭염에, 불경기, 짜증나는 정치를 생각하면 금메달의 통쾌함이란 더 할 것이 분명하고, 그 가치도 '567억원+α'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곽교수도 "금메달의 가치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피카소 그림의 가치를 평가할 때, 스페인과 한국에서 각각 다르게 결과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시장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대상을 평가할 때는 그 가치가 소득, 교육의 질 등에 따라 차이나기 때문이란다.

한편 연구팀은 이번 조사를 위해 설문을 했는데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민 5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밤 새워서라도 경기를 시청하고 응원한다'는 이들의 비율이 23%로 나타났다. '모든 경기를 안 보더라도 결과를 확인한다'는 응답은 67%였다. '별 관심이 없다'는 9% 뿐이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엘리트 체육 육성'의 문제점으로는 대표선수들에 대한 처우 부족(34%), 정부의 투자 부족(40%), 관심 부족(25%) 등의 순으로 응답을 했다.

올 여름. 매일 밤 567억원 어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물론 몇백억원 어치의 즐거움보다 더 중요한건 최선을 다하는 승부근성이겠지만-.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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