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고구려를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평양에 가면 고구려가 보인다. 평양 시가를 벗어나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에 대성산성이 있다. 밑에서 보면 얕은 야산 같지만 정상에 오르면 북쪽은 험준한 벼랑이고 남쪽엔 광활한 평야가 아득히 펼쳐진다. 427년 장수왕이 국내성을 떠나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축성한 외성이 대성산성이다. 산성 중앙의 소문봉 정자에 앉아 이마의 땀을 훔치며 남쪽을 내려다보면 안학궁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발굴 보고서에 의한 복원도에 따르면 부지 38만㎡, 연 건축면적 3만㎡, 사방 600m 성곽을 두르고 21채의 궁궐과 31채의 회랑에 둘러싸인 거대한 궁궐이었던 것이다. 안학궁에서 직선으로 100리 지점에 시조 동명왕릉을 옮겨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 고구려 다리를 넘어 장수왕이 거대한 일산(日傘)을 쓰고 무리의 신하를 거느린 채 시조 능을 참배하는 행렬을 상상할 수 있지 않은가.

*** 평양에선 고구려가 삶의 일부

지금껏 발굴된 고구려 벽화무덤은 80여기 정도다. 20여기가 퉁거우(通溝) 지역에 있고 평양에 무려 60여기가 있다. 이 중 40여기가 평양 근교 강서에 몰려 있다. 이 중에서도 피장자 이름과 축조연대가 확실한 게 덕흥리 고분이다. 무덤 북벽 통로 입구 윗벽에 14행 154자의 종서로 된 묘지명에 유주(幽州) 자사(刺史)를 지낸 진(鎭)이 408년에 이 무덤에 안장됐음을 명기하고 있다. 유주라면 지금의 중국 허베이(河北)성 일대고 자사라면 현재의 도지사급, 408년이면 평양 천도 이전인 광개토대왕 시절이다. 무덤 앞칸엔 진이 13군의 태사들로부터 보고받는 장면이 있고 장엄한 거가(車駕) 행진도가 펼쳐진다. 광개토대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 그리고 신하였던 진. 이들 모두가 중국의 동북 삼성과 평양을 오고 간 동시대 인물이었고 그들 삶의 족적이 기록으로, 묘지로, 비문으로 명백히 남아 있다.

굳이 평양에선 고구려가 어느 나라 역사인지 따져볼 필요가 없다. 삶의 일부고 고조선-고구려-고려-김일성으로 이어지는 역사 정통성의 큰 맥이다. 이 북한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어서 반박할 필요조차 못 느낄지도 모른다. 과거 역사의 영광보다 현재의 고단한 삶 때문에 침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 이만열 위원장이 지적했듯(본지 8월 9일자 이슈 인터뷰)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을 시작한 것은 남북 통일 후 동북 3성에 대한 우리의 영토권 주장 또는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사전 대처로 보인다. 그동안 동북 3성 지역을 여행한 한국 관광객들의 분별없는 애국심도 중국이 이런 우려를 하도록 작용했을지 모른다.

역사는 역사다. 과거 역사를 현재의 정치가 왜곡하거나 강점하려 할 때, 역사는 죽고 정치는 혼란에 빠진다. 한.중.일 삼국 역사는 물고 물리는 은원(恩怨)관계의 톱니바퀴다. 중국이 고구려사로 한국인을 약올리고 일본이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로 과거사 미화에 집착하는 것은 역사를 빌미 삼은 일종의 정치 게임이다. 정부가 얕은 정치 게임에 말려들지 않고 장기적 학술과제로 일단 숨을 죽인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겉으론 조용하지만 안으로는 단호한 자세로 역사주권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의정부 여중생 사건으로 반미(反美)가 되고 고구려사로 반중(反中)이 되는 냄비 체질로는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 정치 게임에 말려들지 않아야

장기적 학술과제의 일차적 단계는 고구려사 회복을 위한 남북역사학술대회를 조속히 여는 것이다. 나아가 한.중.일 역사학자들이 함께 평양을, 동북 3성 일대를 공동 조사하고 공동 연구해 그 결과를 발표하고 공통 교과서를 만들어 서로의 역사를 함께 나눠야 한다.

동북아는 한.중.일 삼국이 함께 생활하고 서로의 유무를 나누는 상생의 장이어야 한다. 이어령 교수의 주장대로 한.중.일은 가위바위보 관계다. 3자는 물고 물리는 관계다. 그러나 가위바위보를 동시에 내밀 때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상생의 관계가 이룩된다. 그 역할이 한반도 주역인 남북한이고 남북한이 고구려사로 함께 뭉칠 때 동북아 지역에서 상생의 조절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통합 이전에 역사적 통합을 위해 남북한 고구려 통합 연구가 시급하다.

권영빈 편집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