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책임한' 수사권자문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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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가 난제(難題)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3일 오전 1시30분 서울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 19층 회의장. 검.경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일수(고려대 법학)교수는 자문위가 검찰과 경찰의 중재안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전날 오후 3시 회의를 시작한 지 10시간30분 만에 나온 발표는 이처럼 허탈한 내용이었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30여 명의 취재진도 지칠 대로 지쳤다. 고성이 터져나오는 회의장 분위기 때문에 합의가 안될 것이라는 것은 예측됐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해법을 찾아보자며 지난해 12월 출범한 자문위는 4개월여 만에 실망스럽게 끝났다.

김 위원장이 밝힌 '난제'는 형사소송법 195,196조의 개정 문제. 현행법이 '검사가 수사의 주체며 경찰은 검찰의 지휘를 받는다'고 정한 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날 자문위에서도 경찰 측은 "경찰도 수사 주체로 인정하고 상명하복을 상호 협력 구조로 바꾸자"는 입장을, 검찰 측은 "검사의 수사 지휘를 통해 견제기능을 유지해야 한다"고 팽팽히 맞섰다.

검.경에서 동수로 추천된 자문위원들은 양측의 입장을 바탕으로 합의된 법 개정안을 끌어내 보자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한쪽이 낸 법 개정안을 수정하고, 수정안을 재차 수정하는 식의 '엎치락 뒤치락'이 반복됐다. 이날 하루 동안 법 개정안만 다섯 개가 만들어졌지만 합의안 마련에는 결국 실패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검.경의 힘겨루기는 정작 국민을 배제한 채 진행돼 왔다. 수사권 조정은 검.경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사권 조정은 다소 생소한 사안이지만 국민의 일상생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다. 검찰에 불려가던 사안이 경찰로 바뀔 수도 있는 등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자문위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국민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자문위는 여러 면에서 국민을 이해시킬 노력도 준비도 없었다. 지난 4개월여 동안 국민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며 언론과의 접촉을 피했다. 지난달 공청회를 열었지만 수사권 조정으로 국민에게 어떤 변화가 오는지 설명이 부족했다.

3일 새벽에 끝난 마지막 회의에서도 문건 한 장 없이 언론을 상대로 간단한 브리핑을 한 게 전부였다. 한 자문위원은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우리의 역할이 말 그대로 자문이었지만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사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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