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아직도 '소통령'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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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책청문회가 아닌 정치청문회로 변질돼버린 청문회엔 나갈 수 없다. " YS의 대통령 재임시절 한때 '소통령' 으로 불렸던 YS의 차남 김현철 (金賢哲) 씨는 경제청문회가 임박하고, 증인으로 채택되자 공개적으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같은 사유서를 청문회 조사특위에 보냈다.

그런 현철씨가 5일엔 엄동설한에 '동행명령장' 을 들고 찾아간 국회 사무처 직원을 문전박대했다.

사무처 직원이 "응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는 말을 전하자, 친구를 시켜 "비정상적이고 정략적.정치보복적 청문회에 출석은 물론 동행명령에도 응할 수 없다" 는 쪽지를 건넸다.

이날 다른 상도동계 인사들도 이런 식으로 국회 환란특위의 동행명령장을 거부했다.

현철씨가 부친의 대통령 재임 중 국정에 엄청나게 개입하고 심대한 영향을 발휘한 것은 이제 만인이 아는 얘기다.

사실 YS 집권기간 중에도 그에 대한 구설수는 끊이지 않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을 들었던 PCS 인허가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한보그룹 등 대기업 대출과정에도 간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 97년 나라를 부도위기로 몰고간 한보사건이 터지자 한보에 대한 특혜대출이 있게 한 배후의 '몸통' 으로 지목받아 검찰수사를 받았고, 아버지가 아직 대통령으로 있을 때 감옥에 갔으며, 실형을 선고받은 장본인이다.

그런데 이런 그가 국회가 보낸 동행명령장을 휴지 던지듯 행동했다.

아직도 YS 재임 중의 소통령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그의 말대로 반쪽청문회에 불과하지만 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나온 이신행 (李信行) 전 의원은 96년 선거에 앞서 현철씨가 자신을 불러 출마의사를 물었다고 진술했다.

정상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은 한보사건이 외환위기의 첫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

원칙없는 PCS 인허가는 귀중한 자원의 낭비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한다.

조사특위가 굳이 그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도 이런 사건에 그의 역할이 있다는 짙은 의혹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처럼 방안에 앉아 청문회에 나오지 않겠노라며 버티는 것을 수용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이상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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