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금리 인하 … 왜? "경제살리기" 대국민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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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본격적인 경기 살리기에 나섰다.

금리를 내리고,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을 줄이고, 재정 지출을 늘리기로 한 것은 직설적인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 누가 봐도 '경기 부양책'이다. 특히 금리 인하는 그 자체로 경기 부양 효과도 있지만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는 대국민 메시지의 성격이 강하다.

5% 성장은 걱정없다던 정부와 한국은행이 그동안의 낙관론을 접었다. 내수경기의 침체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정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지금 경기를 돌려놓지 않으면 내년에는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빠질 수 있다는 데 공감하는 분위기다.

성장이니 분배니 하는 논란에 앞서 당장 경제 살리기가 급하다는 판단이다. 경기 진작책이 개혁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쏙 들어갔다. 대신 경제 문제는 철저하게 실용적으로 풀어간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애써 '경기 부양'이란 말을 피한다. 대신 사실상 경기 부양 효과를 내는 조치들을 조용히 추진할 생각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저녁까지만 해도 금리 인하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12일 오전 회의에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급작스럽게 부각됐다. 이번 경기 대책을 계기로 그동안 경기 부양을 주장해온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부쩍 힘이 실렸다. 앞으로는 이 부총리가 경제팀의 선장으로서 확실히 경제정책의 키를 잡게 될 전망이다. 경제현안을 챙기는 청와대 쪽 창구는 김병준 정책실장으로 정리됐다.

재경부와 한은도 업무 분장을 확실히 하기로 했다. 환율정책은 재경부가 맡고, 금리를 포함한 통화정책은 한은이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왜 경기부양 나섰나=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온 수출과 건설 경기의 둔화가 생각보다 빠르고 깊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승 한은 총재는 "이대로 두면 건설 경기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위축돼 내년 상반기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해 도입하기로 한 종합 부동산세제를 완화하려는 것도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내수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것도 정부와 한은을 초조하게 했다. 가파르게 치솟은 국제유가도 부담스럽다. 한은은 최근의 고유가가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 낮추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5%포인트 정도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얼마나 효과 있을까=한은은 이번 금리 인하가 앞으로 1년 동안 기업과 가계의 이자부담을 1조2000억원 정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추산했다. 그만큼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늘어날 여력이 생긴다는 얘기다. 금리가 떨어지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부추기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최근 투자와 소비 부진이 높은 금리에서 비롯된 게 아니기 때문에 금리 인하의 경기부양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석태 씨티은행 경제리서치 팀장은 "한은의 금리 인하는 폭이 너무 작아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는 최근 오름세를 타고 있는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최근 물가 오름세는 고유가와 무더위.가뭄에 따른 일시적 농산물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로 물가가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출.건설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경기를 부추겨 내년에도 5% 성장을 하자면 내년 상반기엔 수요 쪽에서도 물가상승 압력이 거세질 것이란 주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최근 물가 오름세를 가볍게 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주요 선진국이 금리를 올린 가운데 한국만 금리를 낮춰 국내외 금리차가 벌어졌기 때문에 고금리를 좇아 달러가 선진국으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은은 이에 대해 최근 외국인 투자는 국내 채권보다 주식에 집중돼 금리차로 인한 달러 유출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경민.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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