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감 관저·정보부 건물 … 아픈 역사 품었던 남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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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남산에는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관저를 비롯해 경성신사, 조선신궁(사진) 등이 들어서 왜성대라 불리기도 했다.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제공]


내년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제에 침탈당한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 1910년 8월 29일 서울 남산 기슭에 있던 당시 통감관저에서 치욕적인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됐다. 이 통감관저와 붙어 있는 작은 언덕배기에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이하 중정) 건물이 들어섰다. 내후년 6월 10일은 중정 창설 50년이다. 262m에 지나지 않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남산은 이처럼 한국 근현대사와 운명을 같이 하며 말없이 이 땅 사람들을 지켜봐왔다. 남산의 역사가 곧 한국인과 한국사의 굴곡의 역사였던 셈이다.

이 남산을 미래 세대가 역사의 거울로 삼을 수 있도록 조성하자는 ‘남산 역사신탁’ 사업이 추진된다.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발기인 대표 지선 백양사 주지)은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관저 복원과 중정 건물을 ‘아시아인권·평화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일을 뼈대로 한 사업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소설가 서해성씨 등이 중심이 된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은 종교인과 역사학자·문화인들이 모인 시민단체. 기록과 기억이 으뜸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ㄱ’으로 삼았다.

‘남산 역사신탁’ 사업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첫째,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약이 체결됐던 현장인 조선통감관저를 복원한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와 건축가로 이뤄진 복원위원회를 구성하고 2010년 8월 29일 완공을 위해 모금 활동을 전개한다. 둘째, 옛 중정 남산 본관(현 서울유스호스텔)과 지하취조실(현 서울유스호스텔 앞 소방재난본부), 수사국과 터널(현 서울시청 별관), 6국(현 서울시균형발전본부) 건물을 보존한다. 2011년 6월 10일 중정 창설 50주년에 맞춰 이곳을 근현대역사유적으로 지정하기 위한 서명 청원과 인권·평화센터 전환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02-3210-2010(historytrust@gmail.com).

배노필 기자

◆역사신탁(historytrust)=근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기록과 기억을 보존하고 복원하고자 벌이는 사업. 참여자들이 건물과 대지 등 일정 공간을 사들여 역사적으로 공공화해 후대로 전승하는 일이다. 역사적 공간이 훼손 되는 일을 막기 위해 기금을 조성한 뒤 매입하는데 이는 과거를 사서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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