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론이 간과한 복병, 美 ‘펫뱅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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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호 35면

미국 금융의 날실이 씨티·JP모건 등 ‘머니센터뱅크(Moneycenter Bank·대형은행)’라면, 씨실은 ‘펫뱅크(Pet Bank·지방은행)’들이다. 달러는 두 가지 실을 타고 미국 곳곳으로 흐른다. 덩치 큰 머니센터 은행은 뭉칫돈을, 펫뱅크는 쌈짓돈을 조성·배분·유통시킨다.

특히 펫뱅크는 지역 중소 상공인들의 벗이다. 은퇴자들에게는 친근한 투자 컨설턴트 구실도 한다. 그래서 펫뱅크는 ‘미국 금융의 모세혈관’으로 불린다.

요즘 그 모세혈관이 괴사하고 있다. 올 들어 이달 28일까지 지방은행 84개가 망했다. 1992년 이후 가장 많다. 조만간 100개를 넘어설 듯하다. 은행 파산이 잦았던 미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84개를 많다고 하기는 어렵다. 대공황이 본격화한 30년 1352개가, 대부조합(S&L) 사태가 극에 달한 89년에는 534개가 무너졌다. 하지만 망한 은행의 자산을 모두 합해 견줘 보면 올해치가 30년이나 89년치보다 많다고 로이터통신이 28일 전했다. 그 사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경제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올해 지방은행 파산이 심상치 않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위기 패턴을 보면 대형 금융회사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금융 패닉은 정부의 개입으로 일단 진정됐다. 사람들이 한숨 돌리며 회복을 기대하는 사이 소리 없이 펫뱅크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역 사회의 자금사정이 나빠지고 중소상공인들의 투자와 가계 소비가 줄어들었다. 지역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펫뱅크 파산사태는 급발성 질환인 위기가 만성단계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인 셈이다.

요즘 세계 경제가 곧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이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보다 회복을 예고하는 말에 더 귀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무리는 아니다. 90년 이후 경기침체 경험에 비춰 이쯤 되면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요즘 좋은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런던·도쿄 등의 자금이 지난해보다 훨씬 부드럽게 돌고 있다. 주가가 오르고 위기의 진앙인 미국 등의 집값도 덜 하락하고 있다. 각국 경제성장률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이번 위기가 이렇게 빨리 끝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중요한 복병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펫뱅크 파산사태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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