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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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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36년 11월 23일, 미국의 사진 전문 주간지 라이프(Life)는 창간 특집으로 그레타 가르보의 화보를 실었다. 인터뷰는 없었다.

당시 최고의 톱스타로 군림했던 가르보는 화면 밖에서는 철저하게 은둔자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초기를 제외하면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팬들의 사인 요청도 거부했으며 자기가 주연한 영화의 시사회에도 참석을 거부했다. 41년 은퇴 후 90년 사망할 때까지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비주의의 원조인 셈이다.

본래 신비주의(mysticism)란 ‘자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절대자와 소통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비주의라는 말은 ‘대중과의 소통을 극도로 기피해 자신을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두려는 연예인들의 전략’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의미의 ‘한국적 신비주의’는 마땅히 영어로 옮길 말이 없다. 간혹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는 가르보이즘(Garbo-ism)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이런 신비주의의 화신으로 꼽히던 이영애가 결혼까지도 극비리에 치러 화제다. 남편의 신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 식을 올리고, 결혼 이튿날 법무법인을 통해 사실 통보만을 한 결과 온갖 억측과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영애의 행동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스타로서 팬들에 대한 예의를 잊은 행동이라는 비판론과 아무리 스타라 해도 스스로 사생활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사실 이영애에 대한 이런 큰 관심은 본인이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가르보의 전기 작가인 존 베인브리지는 “결국 언론 보도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그녀를 역사상 가장 파헤쳐 보고 싶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신비화한 결과가 필요 이상의 궁금증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일부 팬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결혼으로 인한 논란이 장기적으로 이영애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정작 걱정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마땅히 내세울 출연작도 없이 그저 이영애풍의 신비주의를 추종하며 30초짜리 CF를 대표작으로 삼고 있는 일부 스타들이다. 이영애야 10년 뒤에도 ‘대장금의 이영애’로 기억되겠지만, 과연 그들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송원섭 JES 콘텐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