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삼성화재배 결승 2국 관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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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일지도 모른다던 이창호9단이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1일 오전 9시30분,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 제2국이 시작되자 조훈현9단 등 프로기사들은 포석의 흐름을 예의 주시했다. 1국에서 李9단은 포석 실패로 말미암아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마샤오춘 (馬曉春) 9단은 중국식 포석으로 나왔는데 여기에 흉내바둑으로 대응하다가 실패했던 것이다. 이때 李9단의 감각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이상감각이 이어지면 어쩌나 근심했던 것이다. 흑을 쥔 李9단은 이번엔 거꾸로 중국식 포석을 펼쳤다.

얼마전 끝난 이창호대 유창혁의 배달왕기전 결승전은 흑을 쥔 쪽이 계속 중국식 포석을 펼쳐 흑번필승의 결과가 나왔다. 세계정상의 기사들조차 최근 백을 들면 흑의 중국식 포석을 시원하게 풀지못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마샤오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처음 중앙에서 화려한 행마를 펼치는 듯 했으나 李9단이 실리를 집요하게 파들어오자 당황한 나머지 착수의 완급조절에 실패한 채 허둥댔다.

馬9단의 특기는 극단적인 실리바둑이다. 실리를 챙겨놓고 상대의 세력을 헤집는데 일류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날은 李9단이 실리를 먼저 챙긴 뒤 백의 두터움 속을 헤집고 다니는 전법으로 나왔다. 전략가 이창호9단이 상대의 특기를 거꾸로 쓴 것이다.

과연 馬9단은 슬슬 밀렸다. 60수에서 오전 봉수. 오후 1시30분에 속개되자 李9단이 상변 백진에 뛰어들어 깨끗한 도배에 성공했다. 이로써 엷었던 흑은 순식간에 두터워졌고 이때부터 신산 (神算) 이창호의 계산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이창호에 대한 한가닥 우려는 어느덧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형세를 비관한 馬9단의 실수가 이어졌고 차이가 반면 15집을 넘어섰을 때 馬9단은 드디어 돌을 던졌다.

대국 후 두 기사는 말이 통하지 않아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복기도 하지 않고 대국장을 떠나버렸다.

이날의 대국은 중국에서 더욱 관심사였다. 베이징 (北京) 의 국영 CCTV와 상하이 (上海) 의 위성TV가 기보를 건네받아 즉석 해설을 했다. 상하이의 신민만보 (新民晩報) 와 베이징의 바둑잡지 기자들은 물론 멀리 쓰촨성 (四川省) 의 성도 (成都) 일보에서도 기자를 파견했다. 랴오닝 (遼寧) 성 심양 (瀋陽) 일보에선 조선족 특파원을 보냈고 쓰촨성에서는 집단으로 응원단이 오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KBS - TV와 PC통신 유니텔 등이 중계에 나섰고 인터넷도 가세했다. 오늘 (3일) 벌어질 제3국은 이번 결승전의 기로가 될 것이다. 대국장은 2국과 마찬가지로 을지로1가 삼성화재 본사 특설대국실. 팬들을 위한 공개해설도 있다.

승부의 핵심은 이창호9단이 백차례의 포석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있다. 馬9단은 흑번에 강하다. 흑은 작전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실리구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1국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중국식 포석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과연 李9단은 어떤 비책을 마련해두고 있을까.

박치문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