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으로 세상보기

신문 과학기사 감상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신문에 실리는 과학기사는 별로 인기가 없다. 독자에겐 흥미로운 소재도 아닐 뿐더러 기사 내용도 어렵게 느껴지기 일쑤다. 반면 과학자들은 기사 내용이 정확하지 않거나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쓴 기사가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과학자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신문사 입장에서도 과학기사는 계륵(鷄肋)이다. 기사가 별로 인기가 없다 보니 과학면은 광고받기가 하늘의 별따기고 과학전문기자를 양성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21세기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 과학뉴스를 무시할 수만도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과학기자들은 보다 선정적인 어법과 과대 포장된 내용으로 독자들을 현혹하려는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과대 포장된 과학기사들을 가려내기 위해 눈여겨봐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000 개발'이라는 말에 너무 현혹돼서는 안 된다. 기업에서 상용화를 목적으로 제품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세상의 모든 과학자가 하는 일은 모두 세계 최초의 일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이미 한 연구라면 저널에 논문이 실릴 수 없기 때문이다.

기사 말미에 으레 따라붙는 '곧 상용화될 전망'이나 '치료의 길 열어' 같은 문구에 속아서도 절대 안 된다. 실험실에서 동물실험을 통해 증명된 치료효과가 실제 임상테스트를 통과해 신약으로 상용화될 가능성은 1%도 안 된다. 만약 지난 10년간 신문기사에 씌어 있는 표현대로 제품이 상용화되었거나 치료의 길이 열렸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엄청난 부자 나라가 돼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공인된 저널에 실리지 않는 연구결과는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논문이 저널에 실리려면 다른 과학자들의 철저한 검증절차가 필요한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언론을 통해 먼저 공개된 연구결과는 뭔가 수상하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 대체로 국가 지원 프로젝트의 결산보고서 마감이 다가오면 이런 기사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라는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통계를 해석할 때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 KAIST 학생 13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중앙일보는 32.5%의 학생이 이공계 위기감 등으로 의대 등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꿀 의사가 있다며 '이공계 위기'를 기사로 다룬 바 있다.

이공계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설문결과는 해석에 따라선 그리 비관적인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역으로 KAIST 학생의 67.5%가 이공계 위기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상관없이 진로를 바꿀 의사가 없다고 대답한 셈이기 때문이다. 통계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바를 이끌어내야지, 하고 싶은 말을 정해놓은 뒤 통계를 끼워맞추면 안 된다.

끝으로, 기사 후반부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문가가 한 말' 인용도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자들은 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의 말을 반드시 인용하는데, 대체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 하는 경우가 많다. 몇십분 동안 인터뷰하고 난 뒤에 결국 실리는 인용구는 독자에게 가장 어필할 만한 표현이나, 사소하지만 흥미를 끌 만한 코멘트인 경우가 허다하다.

선정적 표현과 과장된 언어 때문에 과학기사가 신뢰를 잃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신문사와 과학계로 되돌아올 것이다. 언젠가 정말 중요한 연구결과를 보도하더라도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신문기자의 말을 아무도 믿어줄 리 없기 때문이다. 널리 읽히는 거짓말보다 차라리 아무도 읽지 않는 진실이 낫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바이오시스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