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건 수사발표 파장]국민 법감정에 크게 못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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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는 그동안 법조계에서 광범하게 이뤄져왔던 떡값.전별금과 향응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충격적이다.

李변호사로부터 받은 술대접을 제외하고 돈을 받은 것만 따져도 검사 25명, 판사 5명 등 모두 30명에 이른다.

액수도 한번에 최고 2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일반인들의 상식으론 단순한 '떡값' 으로 인정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받은 경우도 있어 명절이나 인사 등 때가 되면 변호사가 꼬박꼬박 금품을 전달했다는 증거다.

수사를 받기 위해 대검에 출두한 검사들이 "위.아래를 막론하고 검사들중 누가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고 항변했다는 말이 이해될 수 있을 만한 대목이다.

더구나 이같은 금품수수가 구속된 李변호사 한사람에 국한된 문제였겠느냐는 점에서 과거 법조계의 실상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은 1일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무릅쓰고 관련자들을 가혹하리만큼 엄정히 처리했다" 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는 모든 검사들이 전별금이나 떡값.향응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로워질 것" 이라고 말했다.

이제 전별금과 떡값 수수를 금하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고위 간부도 "떡값만으로 차관급 2명이 사표낸 경우가 다른 기관에서 있었느냐" 며 이번 사건 연루 검사들에 대해 엄정하게 처리했음을 강조했다.

검찰의 이 사건 수사는 법조비리를 척결하는 큰 분수령이 된 게 사실이다.

법무부가 앞장서 개선안 마련에 나선 마당이고 검찰.법원직원과 경찰.교도관 등도 더 이상 사건알선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과연 이번 수사결과가 들끓는 여론을 얼마나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드러난 수사결과가 일반 국민을 납득시키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관련 검사들에 대한 처리수준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수사초기 검찰 수뇌부가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나면 판.검사들에 대해서도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법처리 불가' 쪽으로 기울어졌다.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아 사법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게 수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재야단체는 물론 검찰 내부에서조차 "몇 백만원 받은 일반직은 구속해놓고 이보다 더 받은 검사에 대해선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며 일반직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재수사를 촉구하면서 검찰 수뇌부 퇴진 등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파장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넘어야 할 산은 그뿐이 아니다.

심재륜 고검장의 항명으로 노출된 조직의 분열은 물론 沈고검장의 입에서 터져나온 '정치검찰' 이란 비난을 어떻게 추스를지도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한 적잖은 시민들도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검찰로서도 외면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떡값.향응수수 등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 못지 않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마련이 시급하다.

아울러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선 검찰 수뇌부가 앞장서 '외풍 (外風)' 을 차단해줘야 한다.

더구나 일선 검사들 사이에 팽배한 불만과 동요가 돌출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아 이를 추스를 책임 또한 검찰 수뇌부의 몫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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