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검장의 충격성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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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사건에 이은 심재륜 (沈在淪) 대구고검장의 성명사건에 온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관심의 궁극적 대상은 개별사건의 구체적인 내용 및 진위 여부가 아니라 법조계 전체의 구조적 모순과 개혁방향에 모아지고 있다.

법조계의 구조적 모순은 대체로 부정부패.기득권 유지 및 정치적 결탁으로 집약해볼 수 있다.

첫째, 법조계는 과연 부정부패의 온상인가.

법대를 졸업하고 법대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필자는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

그중 법조인은 가장 청렴하고 양심적인 직업인 중의 하나라고 판단된다.

다만, 대인관계가 중시되고 최소한의 성의 표시가 오래된 관행으로 법조계에 존재해 왔다면 이에 순응해 행동한 법조인 개개인의 잘못을 개별적으로 사법처리하거나 사표를 종용하기 보다 이러한 관행의 제도적 모순을 솔직히 시인하고 개선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고 본다.

일제시대의 매국 친일파들과 군사정권아래서 독재자의 추종자들이 모두 고관대작을 지내고, 수억.수십억원의 처벌받지 않는 돈이 '떡값' 이란 명목으로 오가는 작금의 세태아래서 누가 법조계의 오래된 관행만을 나무랄 수 있으며, 또한 법조계 내부에서도 어느 누군가 이런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심재륜 고검장의 경우에도 1백만원의 전별금과 몇차례의 술좌석 정도가 비위의 전부라면 이는 오히려 청렴결백한 관리라고 평가해야 하며,沈고검장이 한편으로는 법조계의 오래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소위 튀는 검사가 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부패에 빠지지 아니함으로써 자신의 신상관리를 비교적 철저히 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법조계는 기득권 유지를 고집하는가.

최근 사법제도 및 법학교육제도의 개혁에 반대하는 법조인들의 일관된 태도를 볼 때 우리 법조계는 지나치게 기득권 유지를 주장하는 것 같다.

최근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 아래서 법률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조인들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기득권의 유지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나라 법률서비스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그동안 향유해 온 기득권마저 상실할 우려가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사법시험에 붙은 변호사들이 판사.검사.변호사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행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 유사한 경력과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보수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양적.질적 수준의 향상을 가져와야 할 것이다.

새로이 당선된 개혁적 성향의 변협회장에게 이런 점을 기대해본다.

셋째, 법조계는 정치권과 결탁돼 있는가.

이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

심재륜 고검장이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현철 (賢哲) 씨를 구속기소했고, 최상엽 (崔相燁) 전 법무장관도 이로 인해 사임한 사실에 비춰 검찰 전체를 정치적 시녀로 싸잡아 매도할 수는 없으며 소위 정무직 검사도 소신있는 검사가 상당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고, 고위급 검사들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진퇴가 결정되는 현실에서 검사들이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현행 법과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오히려 일반적인 관행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면 검사들이 정치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신있게 행동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왜 국민들은 비교적 청렴하고 양심있는 법조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법조계가 아직도 국민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며 그만큼 법조인에게 최고 수준의 양심과 도덕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沈고검장의 성명사건이 과연 비리사건에 연루된 개인검사의 항명인지, 검찰의 제도적.현실적 모순에 대한 정당한 반발인지는 현시점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이나 검찰총장의 권위나 체면이 손상된 것도 사실이나, 이를 단순한 항명 차원에서 처리하지 않고 부하직원의 뼈를 깎는 직언으로 대승적으로 처리한다면 오히려 검찰의 위상과 권위를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沈고검장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과 검찰 수뇌부에 우선 사표제출을 요구한 것은 옳은 주장이 아니라고 본다.

법에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에게는 임기중 그 누구도 사퇴를 강요해선 안된다.

아무튼 법조계가 이번 사건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아 새로운 제도와 관행을 정립함으로써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법조계로 환골탈태 (換骨奪胎) 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상윤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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