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파동]일본서도 92년 고검장 항명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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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검찰도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긴다.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내부 의사를 통일해 외부에 공표하는 것이 철칙이다.

그런 일본 검찰에도 심재륜 (沈在淪) 대구고검장과 비슷한 항명 사례가 있었다.

지난 92년 택배회사인 도쿄사가와규빈 (東京佐川急便) 의 불법 정치헌금 수사 때 일선 고검장이 검찰의 수사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 파문을 일으켰다.

그해 9월 사토 미치오 (佐藤道夫.67) 당시 삿포로 (札幌) 고검장은 검찰이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를 받던 가네마루 신 (金丸信) 자민당 부총재를 소환조사하지 않고 진술서만 받은 채 약식 기소하자 이를 비난하는 기고를 신문에 냈다.

그의 기고 내용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는 조직의 전통을 깼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국민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아사히 (朝日) 신문은 "검찰 불신을 줄이고, 열린 검찰을 지향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보름여 만에 가네마루의 벌금형이 확정된 뒤 재수사 여론이 비등하자 오카무라 야스타카 (岡村泰孝) 당시 검찰총장은 검사장 회의를 소집, 재수사를 결정하면서 사토에게 주의 조치를 내렸다.

검찰은 그해 11월 결국 가네마루를 소환조사하게 됐고,가네마루는 이후 거액의 탈세 혐의가 드러나면서 구속됐다.

사토는 검찰 내에서는 전통을 깬 이단아 취급을 받았지만 도쿄지검의 성역없는 정치인 수사의 발판을 마련해준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삿포로 고검장을 끝으로 검사직에서 물러난 사토는 정계에 입문, 현재 참의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쿄 = 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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