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달라졌다]5.30대 임원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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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통신프리텔은 지난 연말 대규모 발탁인사후 직원들 반응이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젊고 패기만만한 젊은층 사이에서는 고무적인 분위기가 확산된 반면 직원들의 불안감과 냉소주의도 만만찮게 고조된 것. 젊은 임원의 대거 등장은 직장인들의 인식과 조직 분위기에 '충격' 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6~7월 전국 주요기업 임원 5천1백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연령은 54.1세. 90년대초 57세에 비해 3살 가까이 떨어졌다.

이런 추세는 올해 더욱 가속화돼 LG그룹의 경우 임원 평균연령이 지난해초보다 1년6개월 정도 젊어진 47세까지 내려 갔다.

업무 추진이 공격적으로 바뀐 게 변화의 한 결과. SK텔레콤 김종식 부장은 "자신이 있어 그런지 의사 결정이 빨라졌다" 고 말했다.

한국통신프리텔 이상철 사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오고 사무실 분위기도 훨씬 활기차다" 고 전했다. 특히 신진대사가 빨라지면서 직원들 사이에 업무 의욕이 고취되고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런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적지 않다. 최근 30대 임원으로 발탁된 한국통신프리텔 홍영도 (38) 이사는 요즘 밥맛을 잃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중압감에다 직장 동료.선후배들을 찾아도 '훌쩍 커버린 자신' 을 예전처럼 부담없이 맞아 주는 사람이 없다. 그는 "남들은 모두 부러워 하지만 주변 사람과 멀어져 곤혹스럽다" 고 토로했다.

'한시직' 으로 바뀐 자리나 조로 (早老) 현상을 보이며 회사를 떠난 선배들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LG그룹의 경우 임원 평균연한도 90년대초 10년에서 최근엔 7년 정도로 줄었다. K사 관계자는 "드물긴 하지만 지난해부터 1년짜리 초보 임원도 퇴진대열에 낀다" 고 말했다.

젊은 임원들은 살아남기 위한 피말리는 노력을 스스로 강요하고 있다. 지난 97년 삼성그룹의 차장에서 일약 LG인터넷의 사장으로 발탁된 이양동 (李亮東.39) 사장은 "지난 2년간 쉰 날이 거의 없다.

누가 강요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 그렇게 안하면 죽는다는 생각 때문" 이라고 털어 놓았다. 게다가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경조사를 비롯해 체면치레용 씀씀이는 왕창 늘어난 것도 부담이고 주변 질시나 눈총도 견디기도 쉽지 않다.

올초 승진한 한국통신프리텔의 오성목 (吳性穆.39) 이사의 경우 판공비는 고작 10만원 정도 올랐으나 부하직원은 30여명에서 2백여명으로 늘어나 고민이라는 것.

지난 96년 미 맥킨지컨설팅사에서 LG그룹 임원으로 스카웃돼 화제가 됐던 유정준 (兪柾準.37) 이사는 최근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나를 더 필요로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 이라고 말하면서도 "당시 구조조정이 강도높게 이뤄지자 주변의 눈총이 따가웠던 것도 사실" 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발탁승진은 더욱 확산되고, 이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실력' 밖에 없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이런 분위기가 조직내 유대감을 떨어뜨릴 지는 몰라도 회사 발전에는 도움을 줄 것" (LG경제연구원 이윤호 (李允鎬) 원장) 이나 "역량을 키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 (LG인터넷 李사장) 의 말은 최근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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