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약 부작용 적극 신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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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A가 함유된 감기약 파동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늑장대응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2000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금지 조치 이래 국내 의학계의 경고는 물론 본지도 PPA 함유 감기약의 유해성을 보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임상시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건강한 여성임에도 하루 75㎎의 PPA 복용으로 뇌혈관이 터지는 뇌졸중 발생률이 복용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16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의약청은 국내 감기약의 경우 미국과 달리 40㎎ 이내의 저용량이므로 저용량일 때도 위험하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섣불리 판매금지를 내릴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PPA는 값이 싸면서도 효과적인 감기약이므로 극히 드물게 나타날 수 있는 뇌졸중 부작용과의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40㎎짜리 감기약을 하루 두 알만 먹어도 고용량에 해당한다. FDA는 미국에서만 해마다 200 ~ 500명이 PPA를 먹고 뇌졸중을 일으킨다고 발표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누구라도 감기 나으려고 뇌졸중에 걸리는 것을 감수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슈도에페드린 등 비교적 덜 위험한 대체약품도 있지 않았던가.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지만 출혈성 뇌졸중 발생률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월등히 높은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미국 못지않게 많은 사람이 감기약을 먹고 뇌졸중에 걸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뇌졸중 등 치명적 부작용의 위험성이 FDA 등 유력한 기관에서 감지되면 일단 판매금지 조치를 내린 뒤 나중에 정말 위험한지 따져보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조사 후 안전한 것으로 밝혀지면 그때 가서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번 식의약청의 선 조사 후 조치는 국내 제약회사의 연간 PPA 매출액 300억원 정도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차제에 소비자들의 약물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의사나 약사의 설명만 듣는 수동적 태도는 곤란하다. 물론 약물은 시판허가를 받기 위해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친다. 그러나 아무리 엄격한 심사를 거쳐도 통계적 한계상 5만명 가운데 한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한 부작용은 사전에 찾아내기 힘들다. 이러한 부작용은 이번 PPA 파동처럼 시판 후 부작용 모니터링을 통해 찾아낼 수밖에 없다.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체에 나타나는 변화를 잘 살피고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바로 신고해야 한다. 의사와 약사는 환자에게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신고가 접수되면 성실하게 관계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약물역학 전문가인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박병주 교수는 "미국의 경우 한해 40만건의 부작용 신고가 접수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0여건에 불과하다"고 탄식한다. 약은 어느 경우든 독으로 돌변할 수 있다. 약을 약으로 선용하기 위해선 전문가 그룹은 물론 일반인도 부작용에 대한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 하겠다.

홍혜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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