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아파트 대신 지어준 사업가에 주민들 보은감사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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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월급을 쪼개 모은 돈으로 내집 마련 꿈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의 실의에 빠진 얼굴이 눈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저도 7년간 고생해 어렵게 25평짜리 집을 마련한 기억이 있는지라 무조건 아파트를 완공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지요. "

21일 오후 서울영등포구여의도 월드건설 회장실에서는 모처럼 사람사는 정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행사가 열렸다.

서울구로구구로본동 구로월드아파트 입주민 대표들이 우여곡절 끝에 보금자리를 완공해준 월드건설 조규상 (曺圭尙.60)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자리였다.

27~33평형 아파트에 1백89세대가 입주한 이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94년 12월 분양회사인 동진주택 대표가 1천억원대의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분양받은지 10개월만에 꼼짝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더구나 아파트 부지가 은행에 근저당 설정돼 건설허가가 불가능한데도 동진주택측이 서류를 위조, 사업승인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땅마저 날릴 처지였다.

"10년간 꼬박꼬박 모아온 적금에 전세금까지 빼 중도금 6천여만원 내고 기다렸는데 길거리로 내몰린다고 생각하니 날벼락이었지요. " 입주민 조순이 (39.주부) 씨는 당시의 절박했던 사정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있던 주민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뻗쳐왔다.

육군 소령으로 예편, 83년 월드건설을 창업했던 曺회장은 입주민들이 현장에서 아우성치던 모습을 보고는 초급장교 시절 이집 저집 옮겨다니며 7년만에 겨우 집 한칸을 마련했던 기억이 되살아나 결단을 내렸다.

曺회장은 3개 시공보증사 가운데 하나로 참여했으나 불법으로 허가받은 공사여서 법적으론 의무가 없었지만 "집 잃을 처지에 놓인 서민들을 모른 척할 순 없다" 며 무조건 공사재개를 지시했다.

그러나 공사는 '산넘어 산' 이었다.

동진주택이 하청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공사대금을 메워주랴, 부실시공을 재시공하랴 추가된 비용이 수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공사를 만류하던 임원들에게 曺회장은 "사업하다 보면 밑질 때도, 득볼 때도 있는 법" 이라며 "공사나 제대로 하라" 고 오히려 당부했다.

4년만인 97년 9월 완공때 추가비용만 10억원이 넘었다.

공사비도 20억원을 받지 못했지만 曺회장은 무조건 주민들을 입주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토지문제. 불행중 다행으로 IMF로 급락한 부동산가격 덕분에 토지를 원래 가격의 25% 수준에서 경락받을 수 있었다.

지난 12일 등기를 마친 주민들은 감격스런 준공식을 갖고 즉석에서 월드건설측에 감사패를 전달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또 입주자들이 성금을 모아 '평생 은인께 - 작지만 감사패로 대신하려 합니다' 란 내용으로 월드건설측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신문광고도 냈다.

曺회장은 "IMF로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작은 희망이었으면 한다" 며 평생 받은 선물중 최고라는 감사패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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