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바둑 열전 본격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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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스포츠에는 '시즌' 이란 게 있지만 바둑은 일년 열두달 모두가 시즌이다. 국내 기전 13개와 5개의 세계대회가 톱니처럼 맞물려 쉬지않고 돌아간다. 그래도 프로들은 1월과 2월을 1년 농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큰 기전의 예선이나 본선이 이때 시작되기 때문에 여기서의 성패는 곧 1년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선 다음주엔 상금면에서 국내랭킹 1, 2, 3위에 올라있는 테크론배 프로기전 (총상금 2억5천만원).왕위전 (2억3천만원).엔크린배 명인전 (2억원) 등 3개 기전의 본선이 일제히 개막된다.

일정별로는 제33기 왕위전이 먼저 출발한다. 왕위전 본선은 전년도 시드인 조훈현9단.유창혁9단.목진석4단.최명훈6단 등 4명에 새로 예선을 통과한 서봉수9단.최규병8단.김승준6단.이세돌2단 등 4명이 가세하여 총 8명이 이창호 왕위에 대한 도전권을 놓고 리그전을 펼친다.

25일 벌어지는 본선 제1국의 대국자는 서열 1위인 조훈현9단과 꼴찌인 이세돌2단. 저물어가는 제국의 황제 조훈현과 새로 떠오르는 신예중의 신예 이세돌의 대결은 올해 바둑계의 판도변화를 점칠 수 있는 중요한 한판으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6일엔 제4기 테크론배 프로기전의 본선 첫판이 열린다. 대국자는 양재호9단 대 유창혁9단. 충암고 출신의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지만 양쪽 모두 최근 부진했던 탓에 이판엔 비장한 각오로 임하지 않을 수 없다.

16강이 토너먼트로 대결하는 테크론배는 선수권전이라 지난해 우승자인 이창호9단도 본선에 함께 참가한다. 이세돌2단.유재형3단.김만수3단 등 신예와 조훈현9단.서봉수9단 등 노장의 대결이 이곳에서도 치열하다.

28일엔 제30기 엔크린배 명인전 본선이 시작된다. 첫판의 대국자는 정현산6단 대 최명훈6단. 역시 예선을 통과한 16강이 한번 지면 끝인 토너먼트로 대결하는데 테크론배와 달리 본선 우승자는 이창호9단과 타이틀을 놓고 5번기를 펼쳐야 한다.

이곳에서도 신구의 강자들이 치열하게 얽혀있는데 홍종현8단과 이형로4단 등 소위 한물간 기사들이 분전하여 본선까지 올라온 것이 이색적이다.

이런 본선과는 다르게 다음달 9일부터는 한국통신프리텔배 제7기 배달왕기전의 예선전이 시작된다. 홍익동 한국기원에 가면 본선은 4층 특별대국실에서 두고 예선은 2층의 대회장에서 한꺼번에 둔다.

예선 멤버는 대우와 대국료 등 모든 면에서 서럽다. 3대 기전의 경우 예선이 20만~30만원인데 비해 본선은 1백만~2백40만원. 그래도 예선전이 열리면 인근의 여관은 지방 기사들로 북적거리고 응원부대들이 출동하는 등 한국기원은 대망을 품은 무명 기사들의 열기로 달아오르게 된다.

이런 연유로 예선과 본선의 갈림길인 예선 결승전은 많은 기사들에게 프로인생의 고비이자 최대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이들 4개 대회를 포함해 올해도 모두 13개 기전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 대회가 언제 시작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 한국기원 관계자들도 모를 만큼 복잡하여 일반 팬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모으기는 매우 힘든 구조다.

일류들의 잔치인 세계대회도 비슷하다. 팬들이 원하는 일목요연한 대회구조를 만들기 위해 한.중.일의 바둑 관계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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