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생활속에도 Y2K함정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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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0년 1월 1일 0시. 힘겹게 연말결산을 끝내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회사원 K씨는 그대로 승강기 안에 갇히고 말았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K씨가 근무하는 A빌딩의 엘리베이터도 Y2K (밀레니엄 버그.컴퓨터 2000년도 인식오류) 의 예외가 아니었던 것. 오피스텔이나 대형 빌딩 중엔 여러대의 엘리베이터를 연계 운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이 경우 엘리베이터도 Y2K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사고 뿐만 아니다.

자동이체 통장 소지자 중엔 2000년 첫달 난데없는 연체료에 당황하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 은행의 컴퓨터시스템이 2000년을 잘못 인식, 날짜계산이 뒤죽박죽 된 탓.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는 88년 이전에 생산된 일부 VCR의 경우 예약녹화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VCR로 올해 12월 31일 자정 이후 심야영화 녹화를 시도했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Y2K는 이제 더 이상 원전가동 중단이나 미사일 오작동 같은 거창한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 주변에 지뢰처럼 숨어 있다가 보통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피해와 불편을 안길 수 있는 것이다.

통장거래.크레디트카드 이용도 그중 하나. Y2K에 대비하는 미국의 시민모임인 카산드라프로젝트는 올 가을부터 2000년 2월까지는 ▶2개월분의 생활비를 통장에서 빼내 미리 확보하고 ▶월부금이나 자동이체도 가능한 것은 3~4개월치를 앞서 낸 뒤 ▶영수증을 잘 챙기고 입출금 상황이 기록된 통장을 잘 보관하고 있을 것을 권하고 있다.

신용카드의 경우 유효일이 2000년 이후인 것은 이 기간 중 아예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다는 것. 국민은행 정보시스템부 백승용 (白承容) 과장은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말로 Y2K를 거의 해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며 "그러나 외국은행과 거래하는 사람들의 경우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2금융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Y2K해결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중환자로 장기 입원 중이거나 심장박동보조기.투석장치 등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신경써야 한다. 약물 자동공급장치 등이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

승용차도 Y2K로 속을 썩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국산차량이 달리다 서는 경우는 없겠지만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겨 흰색을 주문했는 데 검은색이 출고될 개연성은 없지 않다" 고 말했다.

또 자체 기능 전자점검장치가 부착된 일부 외제차량의 경우 이 장비에 내재한 실시간 장치가 문제를 일으켜 엉뚱한 날짜를 점검시기로 알려줘 차량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산드라프로젝트는 미국 GM사가 엔진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최근 폰티악.올즈모빌 등에 대해 리콜 조치를 취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차량에 대해서도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구급 전문가들은 "Y2K 발생시점이 겨울철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보통사람들도 이 시기 단전.가스공급 중단 등에 대비해야 할 것" 이라며 "연말이 오기전 비상식량.건전지.구급약 등을 확보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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