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모스크바에세이]팔려나가는 러 피겨선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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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즘 러시아에는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터 부모들이 몰려오고 있다.

러시아 남자 피겨스케이터들을 사가기 위해서다.

페어 종목에서 은반의 미녀를 꿈꾸는 수많은 미국 소녀들의 국내 파트너가 턱없이 부족해 기량과 용모가 뛰어난 러시아의 청년들을 모집하려는 것. 미국의 부유층인 이들은 잘 생기고 실력있는 러시아 남성 스케이터들에게 접근해 모든 체재비와 훈련비를 대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4년째 활동중인 드미트리 분두킨 (21) 도 이같은 요청을 받아 95년 17세의 나이에 미국에 건너간 러시아 스케이터다.

그는 미국 여자 피겨스케이터들과 짝을 이뤄 지역대회에서 이미 몇개의 메달을 따냈다.

첫 파트너는 피겨에 흥미를 잃어버려 2년만에 헤어졌지만 곧 바로 또 다른 여자 스케이터를 만나 2년째 짝을 이루고 있다.

여자선수의 부모들은 그에게 코치수업료.발레교습료 등 강사료와 집.자동차.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1년에 6만달러 정도를 지불한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트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이와 같은 케이스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러시아의 남성 피겨스케이터는 줄잡아 2백여명. 뛰어넘을 수 없는 고봉들이 수두룩한 러시아 피겨스케이팅계의 현실상 중급수준의 남성 스케이터들이 이러한 제안을 뿌리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돈에 팔려가는 것" 이라는 비난도 없진 않지만 "발레나 무용의 경우도 서구의 남성 무용수 부족을 러시아 남성 솔로들이 채워준 경우가 많다" 며 "피겨스케이팅과 발레가 무엇이 다르냐" 는 항변도 만만치 않다.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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