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멋쟁이 중년'이 소비 이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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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단카이(團塊)'라 불리는 세대가 있다.

전후(戰後)인 1947년에서 49년에 걸쳐 태어난, 이른바 '1차 베이비 붐'세대다. 인구 수만 700만명이 넘는다. 다른 해에 비해 20~50%나 많다고 한다. 잘 뭉치는 이들의 특성을 빗대 '덩어리'를 뜻하는 '단괴'란 표현을 쓴다.

이들은 '전공투(全共鬪)'라 불리는 과격한 학생운동을 경험했고, 유례없는 경제성장기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기도 했다. 반면 한창 일할 나이에 버블 붕괴로 인한 구조조정이란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항상 현대 일본 사회의 중심에 서 왔다.

그런데 요즘 이들 '단카이 세대'가 또다시 일본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카이 세대'가 3~5년 후로 다가온 정년퇴직을 앞두고 꼭꼭 닫았던 호주머니를 열면서 일본의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단카이 경기'다. 몇년 후면 손에 쥐게 될 퇴직금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일했던 데 대한 자기보상 심리가 겹쳐 "쓸 때 쓰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요즘 도쿄(東京)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상당한 변화가 느껴진다. 먼저 '패션'과는 담을 쌓고 살던 이들이 '멋 내기'에 나서고 있다.

뒷주머니 위치를 높이고 무릎 부분을 올려 하체가 길게 보이도록 한 '롱다리 바지'와 바지 뒷부분의 폭을 잘록하게 만든 '예쁜 엉덩이 바지'는 요즘 '단카이'에겐 최고 인기상품이다.

이뿐 아니다.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염색약은 지난해에 비해 45%가량 매출이 늘고 있다. 또 70년대부터 80년대의 고도성장기에 크게 인기를 끌었던 사각테의 선글라스도 50대 중후반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백화점협회 기쿠치 신지(菊地愼二)조사부장은 "단카이 세대가 경기회복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패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70년대부터 줄곧 젊은이 대상 영업에 치중하던 세이부(西武)백화점의 경우 지난 봄부터 노선을 바꿔 '단카이 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당분간 '멋쟁이 중년'의 수가 일본 경기의 흐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지 모르겠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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