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한은 외환은 출자이어 예산삭감 싸고 옥신각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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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의 해묵은 감정싸움이 최근 다시금 곪아터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은의 외환은행 출자, 한은 예산책정, 금리와 통화정책 등에 이르기까지 주요 현안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징조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와중에도 한은법 개정을 둘러싸고 감정싸움과 국회로비로 세월을 보낸 한은과 재경부가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돌입과 함께 한은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에도 사사건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 손발 안맞는 금리.통화정책 = 법개정후 두 기관간 '1차전' 은 지난해 7월께 불붙은 금리인하 논쟁. 재경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와 통화공급 확대 정책을 들고나오자 한은측은 "통화공급이나 공개시장조작 금리는 한은 결정사안인데 재경부가 왜 왈가왈부하느냐" 며 즉각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한은은 결국 여론에 떠밀려 스스로 환매채 (RP) 금리 인하에 나섰다. 금리.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는 올해도 여전하다.

재경부는 급격한 원화가치 상승을 막고 실물경기 부양을 위해선 금리 추가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 반면 한은은 이미 경기지표들이 호전되고 있는 시점에서 무리한 금리인하는 자칫 과열을 불러올 수 있으며, 또 금리를 낮춰도 외자가 주식시장으로 흘러가 환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한은은 99년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아직까지 확정짓지 못하고 "콜금리를 약간 낮춰간다" 는 모호한 말로 1월중 임시계획만 발표해 놓은 상태. 물가 역시 한은이 통화당국 입장에서 연간 4% 상승률을 재경부측에 제시했으나 재경부는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한은보다 낮은 3% 목표치를 발표,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 감정싸움 산넘어 산 = 두 기관간 감정싸움의 큰 불씨는 한은의 외환은행 출자문제. 정부는 지난해 9월 경제장관회의에서 외환은행 문제는 대주주인 한은의 출자를 통해 풀기로 결정했으나 한은은 아직까지도 위법소지가 있다며 예금보험공사를 이용한 간접출자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경부는 "예금보험공사를 통한 간접출자는 명분도 없을 뿐더러 절차도 복잡하다" 며 직접출자를 계속 종용하는 상태. 양측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와중에 외환은행의 2대주주인 독일의 코메르츠방크는 얼마전 "직접출자든 우회출자든 한은이 출자만 한다면 추가출자를 하겠다" 는 의사를 밝혀온 상태.

하지만 두 기관은 이 문제를 풀기는커녕 요즘은 한은의 올예산 책정을 둘러싸고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한은의 경비성 예산 심의권이 재경부로 넘어온 것을 계기로 재경부가 예산 20% 삭감안을 내려보내자 한은측에선 "외환은행 출자 거부에 대한 보복조치" 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나선 것.

급기야 정덕구 (鄭德龜) 재경부차관이 지난 7일 이례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 "해야 할 사업을 못한다면 추경예산이라도 편성해 도와주겠지만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은 한은도 피할 수 없는 사항" 이라고 밝혔으나 한은은 여전히 "재경부는 10% 안팎의 인원만 줄여놓고 한은에만 30%씩 인원 (지난해 25% 감축한 데다 예산삭감으로 5% 추가) 을 감축하라는 건 부당하다" 고 반발하고 있다.

정경민.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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