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파워 비결은 ‘리더십-열린 중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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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中)가 23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관저 정원에서 열린 ‘어린이 권리 향상’을 위한 행사에 참석해 무대에서 청중을 바라보고 있다. [베를린 로이터=뉴시스]


“우리에겐 힘이 있습니다.”(Wir haben die Kraft.)

다음 달 27일 독일 총선을 앞두고 베를린 시내에는 선거 포스터가 나붙었다. 앙겔라 메르켈(중도 우파 기민당) 총리의 홍보 포인트는 ‘힘’이다. 메르켈식의 힘 있는 외교와 경제는 그의 개인적인 인기와 맞물려 유권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메르켈의 대연정 파트너에서 다시 라이벌이 된 중도 좌파 사민당의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외무장관)는 메르켈에게 10%포인트 이상 처져 있다.

현지 언론은 “역대 선거와 달리 메르켈 독주 양상”이라고 전했다. 메르켈이 조만간 중도 성향의 자민당과 손을 잡으면 선거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선거판을 압도하는 메르켈의 힘은 뭘까.

◆강력한 리더십에 국민이 신뢰= 20일 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건축업자 지크프리트 비크(49)는 메르켈 지지 이유를 “조용하지만 강한 리더십”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전 총리들에게 볼 수 없었던 글로벌 리더십을 들었다. 메르켈은 2007년 G8(주요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 당시 힘들어 보이던 지구온난화 대책 합의를 이끌어 냈다. 또 유럽연합(EU) 의장으로서 러시아의 인권 문제 시정 촉구 등에 결단력을 보이며 EU의 정치적 리더로 올라섰다. 국제 사회에서 독일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신뢰를 얻었다. 독일은 2분기에 0.3% 성장을 기록하며 프랑스와 함께 유럽에서 금융위기에 가장 잘 대응한 나라로 꼽힌다. 메르켈은 금융위기 직후 수출 1위국답게 주력 업종인 자동차산업 보호 대책 등의 경기 부양책을 적절히 내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권 4년을 통틀어도 성적표는 평균 이상이다. 독일경제연구소 드레거 국장은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이면서 경기도 좋았기 때문에 위기에 잘 버텨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열린 정치’로 난관 극복=메르켈은 옛 동독 출신에 여성이고 개신교 신자이면서 이혼 경력이 있다. 기민당의 과거 거물 정치인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악조건들이다. 그는 이런 ‘태생적 한계’를 자신의 정치 지평을 넓히는 데 적절히 활용했다. 우선 여성의 사회 진출에 앞장섰다. 워킹맘을 위해 탁아소 지원 예산을 늘려 탁아소 종일 개방을 시작했다. 최근 경기 부양책에도 건강보험료 인하 등 복지 예산을 포함시켜 사민당이 할 말을 없게 만들었다. 메르켈은 경제적 중도 노선을 추구하면서 사민당의 텃밭까지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정강 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인물에서 앞선 메르켈이 싱거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금속노조(IG메탈)의 중립 선언이다. IG 메탈은 역대 선거에서 항상 사민당 지지를 밝혔지만 이번에는 특정 정당을 밀지 않기로 했다. 두 정당 간에 큰 차이가 없어 굳이 사민당을 지지해 득 볼 게 없다는 것이 숨은 이유다.

메르켈은 기존 지지층인 보수 성향 유권자를 달래는 정치 감각도 갖췄다. 그가 이달 초 선거 운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만난 것이다. 콜은 여전히 우파 유권자들에게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2000년 콜의 비밀 정치자금을 메르켈이 폭로한 이후 두 사람은 소원한 관계였지만 메르켈은 필요에 의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독 지역을 지원하는 연대세 폐지 등을 내건 것도 우파를 의식한 배려다.

베를린=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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