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 육상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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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어제(한국시간) 폐막된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이런 상태로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어떻게 치르겠다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한국팀의 참담한 경기 결과가 마음에 걸린다. 경기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고, 기록이 오르내리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팀의 성적은 일시적 불운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 탓이라서 더욱 심각하다. 세계 육상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우사인 볼트 같은 선수가 우리는 왜 없느냐고 다그치자는 게 아니다. 체격조건이 비슷한 중국과 일본이 남자마라톤 단체전 동메달, 여자마라톤 금·은메달 등 나름대로 선전했는데 유독 한국만 전원 예선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냈다면 무언가 근본부터 잘못돼 있는 것이다.

선수들의 정신적 해이와 잦은 부상, 육상연맹과의 불화를 부진의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입상하기 쉽고 거액의 포상금까지 걸려 있는 전국체전에 집중하느라 별다른 인센티브가 없는 세계대회를 경시한다는 말도 있다. 대회 과정은 그것대로 분석해 개선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한국 육상의 ‘기초 체력’을 새롭게 다지기 위한 노력을 육상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기울여야 할 때다.

달리고, 뛰고, 던지는 몸짓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활동영역에 속한다. 육상경기의 짜릿한 매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육상 성적은 그래서 다른 스포츠와 달리 국민건강의 척도나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우리 육상의 저변이 1994년 체력장 폐지를 계기로 급속도로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중·고교에 체육과목이 있지만 다른 입시과목에 밀려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체력 실태조사에서도 초등학생의 오래달리기 평균기록은 97년 측정치가 92년에 비해 40초 이상 처진다. 50미터 달리기 기록이 일본 초등학생보다 1초나 뒤지는 등 일본·중국에 비해 체격만 컸지 기초 체력은 한참 떨어진다. 이번 대회 결과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자명하다. 육상의 저변을 넓히는 조치가 시급하다. 한국 육상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