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대입 논술 문제 해설]이대.성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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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4일부터 논술.면접고사가 시작됐다.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논술의 비중이 커졌다.

상당수 대학들이 채택한 논술의 논제와 제시문은 그동안 중앙일보가 '논술길잡이' 를 통해 소개해온 것들이었다.

5일 실시된 이화여대와 성균관대 대입 논술도 예상대로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출제됐다.

그렇다고 고전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고전을 읽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 배경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고전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논제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논제들이었다.

이화여대.성균관대의 논술고사 문제 (발췌) 와 해설을 싣는다.

문제의 전문은 중앙일보 인터넷신문 (www.joongang.co.kr) 참조.

[이대-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 에서 제시문을 출제한 인문계 논제는 국가와 법질서가 무너진 상황에서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다 난국에 봉착하게 되는 가상의 부족이야기를 제시하고 이기적 삶이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와 대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한 논제였다.

왕권을 둘러싼 권력투쟁, 홍수 등 다양한 사례가 열거되어 있지만, 핵심은 인간성과 공정한 규칙이 없는 사회가 결국 자기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논제의 출제배경에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야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이미 무한경쟁이 공동체 자체를 와해함으로써 결국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주목해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평등.화해.관용 등의 공동체적 가치를 대안으로 부각시켜 논의를 전개하면 좋은 논술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계의 논제는 최근 전인류의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고 있는 생명공학과 관련된 논제로서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유전학적 유사성을 설명하는 글,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성적.도덕적 존재임을 강조하는 '맹자' 에서 발췌한 글, 동물로부터 진화했음에도 인간은 동물과 다름을 강조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에서 뽑은 글들을 제시하고 수험생의 견해를 묻고 있다.

과학자의 입장을 반영한 첫째 제시문과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두번째 제시문을 참고하되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세번째 제시문의 논지를 중심으로 전개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최근의 생명공학에서처럼 자연과학의 발달에 가려 소홀히 되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자연과학도에게 필요하다는 출제의도가 깔려있다.

[성대-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중 정의 (正義)에 관한 소피스트의 논변을 소개하고 비판적 견해를 우리 현실과 관련시켜 논술하라는 논제였다.

소피스트의 논변은 흔히 '정의는 강자의 이익' 이라는 유명한 명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논제가 강조하고 있는 대목은 '정의' 라는 이름으로 지배자의 이익이 정당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심대한 부정부패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오히려 축복을 받는다는 점. 이같은 예를 통해 우리 사회의 권력층 비리와 연관시켜 논의할 수 있도록 자락을 깔아놓고 있다.

문제는 부정의한 사회적 현실에서 정의로운 행위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있다.

정의가 당연히 이익을 받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이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정의와 개인의 이익이 불일치하는 상황. 우리 사회의 예를 들어 이같은 딜레마 상황을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변을 구사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부정의한 현실을 빌미로 부정의 자체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인이 정의롭더라도 사회가 정의롭지 못할 때 정의로운 개인은 언제나 희생되게 마련이며 따라서 정의란 강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도 부정의임에는 틀림없어 설득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정의가 언제나 '사람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부정의한 현실을 개혁하는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왜곡되지 않는 상태일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들면서 사회적 정의실현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도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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