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신춘중앙문예희곡당선작]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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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적으로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편수의 응모작이 들어왔으나 올해에도 여전히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언어에 대한 존경심과 연극무대를 만들어보는 상상력과 인생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담은 희곡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서로 엇비슷한 수준의 응모작 대여섯 편이 겨루게 됐다.

두 여자 사이를 오가는 남자를 혼내주는 '악녀주의보 (윤영미)' 는 톡톡 튀는 대사와 장면을 끌어가는 상큼함이 눈여겨 볼만했으나 인생을 보는 눈이 가벼웠다.

배우와 화가의 예술적 고뇌를 그린 '모노 드라마 (백로라)' 는 예술과 삶에 대한 성찰이 묵직했으나 대사가 너무 관념적이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약의 폐해를 그린 '헤라클레스의 독 (고선웅)' 의 작가는 무대적 친화력이 대단하고 신인답지 않게 입심과 극적 추진력이 능란했으나 정작 무슨 얘기를 하려는가 하는 점이 불분명했다.

새로운 천년을 맞은 세대간의 교차를 알레고리적으로 다룬 '밀레니엄 버그 (박준호)' 는 시의적절한 주제와 맵시 있는 구성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끝까지 논의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기교에 흐르는 경향이 있고 언어가 거칠며 정작 인간에 대한 성실한 탐구가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민 '거리 위의 작업실 (이종락)' 은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의 생명과 죽음과 인간관계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도전해본 작품이다.

언어도 아직 미숙하고 상황을 엮어가는 기교도 서툰 점이 있으며 주제도 덜 익었다.

그러나 일상의 차원에서 출발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진지하며 집요한 관심, 그리고 자기만의 어떤 연극성에 의해 또 다른 한 차원으로 비상하려고 하는 그 가능성을 높이 샀다.

<심사위원 오태석.김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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