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상에게 듣는다]1.포드자동차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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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이중고로 시련을 맞고 있는 한국 대기업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중앙일보는 종합 기획대행사인 뉴컴사와 공동으로 '위기의 해법, 경제정상에게 듣는다' 는 신년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유종근 (柳鍾根) 대통령 경제고문이자 전라북도 지사가 대담자로 나선 이번 기획을 통해 구조조정의 선두주자인 미 포드사, 세계적인 투자전문가 조지 소로스 등으로부터 한국기업이 나가야 할 방향 등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1) 포드자동차 알렉스 트로트만 회장 2) 월마트 바비 마틴 회장 3) HSBC 존 본드 회장 4) 다우 코닝 딕 해질튼 회장 5) 퀀텀 펀드 조지 소로스 회장

▶유종근 지사 = 한국의 자동차 시장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현대가 기아를 인수했고 대우가 삼성을 인수하게 됐는데 이런 변화를 어떻게 봅니까.

▶알렉스 트로트만 회장 = 국가적인 생산능력 조정의 문제라고 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시장에서 트럭과 승용차는 약 40% 과잉공급 상태입니다.

80개의 조립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이지요. 80개나 되는 공장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경쟁이 치열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규모.기술.비용효율 측면에서 모두 앞서야 합니다.

▶유 = 포드는 한국시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왔는데 미래의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포드는 어떤 역할을 할 계획입니까.

▶트로트만 = 아주 어려운 질문이군요. 우리도 한국에서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계에서 비중이 큰 시장이니까요. 물론 지금은 다소 침체됐지만 한창때는 유럽 주요 시장중 하나인 스페인과 거의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포드는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국 시장이 완전 개방된다면 한국에 훨씬 많은 차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론 한국 내에 자체공장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유 = 지금도 계속 시장이 재편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지겠죠.

▶트로트만 = 그렇습니다.

아직 한국 자동차 업계에 관해서는 후반전이 미지수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유 = 현재 한국 자동차 산업은 중대한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포드가 어떻게 80년대 자동차 업계 전체의 위기를 극복했었는지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트로트만 = 협동심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80년대에 저희는 거의 존립이 불가능한 지경까지 몰렸습니다.

우리는 품질.생산성.종업원당 생산량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 세계가 우리의 상대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고가 돼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전사적으로 노사가 하나가 되어서 함께 움직여 왔습니다.

만약 노조 지도자들이나 경영진이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노사화합의 결연한 의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가 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유 = 한국 자동차 업계의 생산능력이 과잉이라해도 수출할 수만 있다면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요.

▶트로트만 = 아주 어려운 질문이군요. 문제는 과연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경쟁력 있는 가격에 뛰어난 품질의 차를 공급할 수 있느냐, 그리고 그 제품이 기술적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저는 한국 업체들이 짧은 시일내에 세계적인 메이저 회사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갖추기는 아주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규모가 작아서 규모의 이점을 얻기가 어렵고 기술적으로도 메이저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유 =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에 최대 걸림돌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트로트만 = 내수시장이 튼튼하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만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극히 미미하죠. 때문에 수출에 많은 부분을 기댈 수 밖에 없는데, 수출 시장은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수출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그만큼 위험부담도 큽니다.

▶유 = 아시아 시장에서 포드의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못미칩니다.

2005년 1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포드는 약 10억달러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들었읍니다만.

▶트로트만 = 우리는 5~10년 전부터 아시아지역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인도에서 공장 한군데가 가동되고 있고 인도 남부에 또 큰 공장을 건설중입니다.

중국에서는 승용차 공장을 비롯해 몇몇 합작회사가 있고 앞으로도 더 투자할 계획입니다.

베트남에도 막 공장설립을 끝냈으며 태국 공장은 가동 중입니다.

한국 시장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습니다.

한국 자동차시장은 아직 닫혀 있읍니다.

수입차 비율은 1%를 약간 웃도는 정돕니다.

수입차중 포드가 선두이긴 하지만 그 물량은 불과 서너 시간이면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이 개방된다면 한국 회사들로서는 생존하기가 아주 어렵겠죠.

▶유 = 최근 크라이슬러와 다임러 벤츠의 합병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에는 엄청난 지각 변동이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이와 비슷한 거래들이 있었는데, 이런 과정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또 어떻게 대처해 나가실 계획인가요.

▶트로트만 = 포드는 다음 세기에 있을 범세계적인 경쟁에 오래전부터 대비해 왔습니다.

그중 중요한 변수가 합병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20여개의 메이저 회사들이 있는데 앞으로 10~20년 내에 6~7개로 재편될 것으로 봅니다.

21세기가 되면 스스로를 한국기업, 일본기업, 미국기업 또는 프랑스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세계화만이 살 길입니다.

▶유 = 한국 자동차 업계는 고통스럽게 다운사이징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보장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 근로자들에게 가혹한 경험입니다.

포드는 직원 감원이란 과제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트로트만 = 종업원을 내보내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의 경우 한쪽에서 직원을 내보내면 다른 쪽에선 거대한 새 시장이 형성되면서 잉여노동자들을 흡수해 줍니다.

그러니까 한국보다 훨씬 충격이 덜하겠죠.

하지만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기업이 경쟁력도 없으면서 잉여노동력을 유지하면 결국 파멸을 연장시키는 것 밖에 안됩니다.

▶유 = 최고 경영자로서 무엇을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직원들에게서 어떤 자질을 요구하시는지요.

▶트로트만 = 의지와 신뢰, 근면을 우선 덕목으로 칩니다.

또 평생동안 계속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경쟁력을 잃지 않을테니까요. 회사일에 전념하고 회사 목표에 전념하고 협동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회사를 위해 봉사할 것인가 하는 것을 찾아주기를 무엇보다도 바랍니다.

▶유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알렉스 트로트만회장 약력>

▶33년 영국 미들섹스 출생 ▶51년 스코틀랜드 보로뮈어 고등학교졸 ▶55년 포드 유럽입사 (영국지사 자재부 견습생) ▶67년 유럽지사 생산기획부 부장▶83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장 ▶88년 포드 유럽 회장^89년 포드자동차 그룹 사장 ▶93~98년 12월 포드자동차그룹 회장 및 이사회 의장

정리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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