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냉키도, EU 트리셰도 ‘경기회복 새싹’ 한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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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기 전망에 있어 대체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중앙은행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제 회복에 대한 낙관론을 피력했다. 최악의 위기는 끝났고, 이번 위기가 ‘제2의 대공황’으로 비화할 위험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확연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지난 주말 미국 증시도 올랐다.

하지만 시장의 경기 회복 기대감이 도를 넘지는 않도록 하기 위해 경제에 대한 우려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3일 이처럼 엇갈리는 듯한 중앙은행장들의 시각을 ‘조심스러운 낙관론’이라고 평가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21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세계 중앙은행장 연례모임에서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의 적극적인 위기 대처로 대재앙을 막는 데 성공했으며, 세계 경제는 불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경제 활동이 미국과 해외에서 모두 안정되고 있으며, 위기의 가장 위험한 국면도 지났다”며 “경제가 가까운 장래에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성장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업률이 오랫동안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인 만큼 성장세는 약할 것으로 예상됐다. 버냉키 의장은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 긴장감이 여전히 남아 있어 많은 기업과 가계가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경기 회복에 대해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경기 회복의 파릇파릇한 새싹(green shoots)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고 해서 ‘드디어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하기엔 맘이 편하지 않다”고 21일 말했다. 트리셰 총재는 “아직 (중앙은행이)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으며, 우리는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확장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바꿀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하루 뒤인 22일 경고성 발언의 강도는 더 세졌다. 그는 “실물경제가 자유낙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 일부 있지만 우리 앞에는 울퉁불퉁한(bumpy) 회복이 기다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도 “경제가 다시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며 “은행 시스템을 건전하게 복구하기 위해선 할 일이 많다”고 했다. 피셔 총재는 버냉키 의장이 1979년 MIT 박사과정에 다닐 때 지도교수였던 인물로, 중앙은행 총재들 사이에서도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도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내년에 소진될 경우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미국 경제는 여전히 약하며, 최근 회복이 지속가능한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자칫하면 ‘더블딥(반짝 회복 뒤 경기 침체 지속)’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세계 경제가 매우 완만한 ‘U자’ 형태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바닥이 매우 길고, 평평한 모양새의 U자형 회복을 예상했다. 회복세가 강하지 않으면서 지지부진하게 게걸음을 치는 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잡지는 “정부의 부양책에만 의존하는 경기 회복은 계속 이어지기 힘들다”며 “살아나는 것 같은 미국 주택시장도 주택 압류가 다시 늘고 실업률이 줄지 않으면 또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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