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 김태현,98년 잿빛 스타트…금빛 피날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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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아시아의 헤라클레스' 김태현 (29)에게 올해는 파란의 연속이었다. 98년 새해 아침을 맞는 김태현은 우울했다.

젊음을 불태우며 바벨과의 기나긴 싸움을 통해 아시아 최고 역사로 군림했지만 국제통화기금 (IMF) 의 무게는 견뎌내기 힘들었다. 지난해 12월 소속팀인 해태음료가 해체되면서 김은 실직자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충분히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역도 선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IMF여파가 있기 전 김은 생고기 5~6인분은 거뜬히 해치우는 먹성을 자랑하며 체중도 1백40㎏에 달했다.

'세계제패는 시간문제' 라는 평가도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소속팀 해태에서 월급과 훈련보조비 명목으로 한달에 2백여만원, 전남체육회로부터 70만~8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으며 연금도 월 30만원으로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실직자가 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한달에 1백만원씩 적금을 들고 나면 연금만으로 체력관리 비용을 대야 했다. 그나마 역도연맹에서 1주일에 세 번씩 몸보신을 시켜줬지만 1년 전보다 체중이 12㎏이나 줄었다.

'배가 고파서 역도 하겠느냐' 는 농담 섞인 우려에 대해 김은 "그래도 내 곁에는 바벨이 있어 다른 실직자보다 행복하다" 며 자위했다. 가장 큰 고통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계약금과 연봉을 몇천만원씩 받았다는 인기종목 선수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너무나 부러웠고 점차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등까지 다쳐 한달 이상 훈련을 쉬어야 했다.

개인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보스기질이 있어 따르는 후배가 많지만 이들을 챙겨줄 여유가 없어 주말에는 외출도 하지 않고 칩거생활 (?)을 했다.

이전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님께 수시로 용돈을 보내드렸지만 올해는 한번도 용돈을 드리지 못해 실직의 아픔을 몸으로 절감해야 했다.

고진감래 (苦盡甘來). 김태현은 고통 속에서 한해를 보냈지만 올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우선 지난 11월말 인천시체육회에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용상 1차시기에서 일찌감치 금메달을 확정하는 등 여유있게 아시안게임 3연패를 달성했다. 아시아 최고의 역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 쾌거였다.

"지난 1년이 마치 10년 같았다" 는 김은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고 은퇴하겠다" 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바벨과 씨름하고 있다.

김현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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