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바둑계 결산]하. 한·중·일 '역시 이름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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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세계 바둑계의 판도를 놓고 한.일.중 3국의 의견은 서로 다르다. 이창호9단이 최강자인 것만 일치할 뿐 그 다음에 들어가면 입장이 사뭇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마샤오춘 (馬曉春) 9단은 "한국은 이창호 한사람만 강하지만 중국은 여러명이 강하다" 고 말한다. 조훈현9단이나 유창혁9단이 들으면 매우 서운할 얘기다.

그에 반해 한국에선 마샤오춘이나 창하오 (常昊) 8단만 알 뿐 다른 기사들은 하수 취급을 한다. 또 일본에 대해선 조치훈 천하로만 알고 있다. 과연 그럴까. 98년도에 치러진 3국의 국내 기전을 통해 실상을 알아보자.

▶한국 = 국내에선 지난해보다 3개가 줄어든 13개 대회가 치러졌다. 그중 2개는 신인들의 대회고 1개는 여류들만의 대회. 따라서 전 기사가 출전한 대회는 10개다.

이중 이창호9단은 국내 최대의 SK배 명인전과 왕위전에서 우승했고 테크론배 프로기전.박카스배 천원전.최고위전.기성전까지 모두 6개 기전에서 타이틀을 장악했다.

국수와 프리텔배는 최근 빼앗겼고 대왕.국기는 중단상태라 타이틀 수가 급감했다. 조훈현9단은 속기대회인 KBS바둑왕전에서 이창호를 한번 꺾었을 뿐 연패를 당하다가 국수전에서 타이틀을 따내 2관왕.

유창혁9단은 연말에 프리텔배 배달왕기전에서 이9단을 3대2로 꺾고 9개월만에 무관에서 탈출했다. 최명훈6단은 이창호에게 두번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신인대회는 이성재5단과 목진석4단이 양분했다. 여류국수전에선 윤영선2단이 왕관을 썼다.

▶일본 = 23개 기전중 상금이 큰 3대기전 (기성.명인.본인방) 을 조치훈9단이 독식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조9단은 이 3대 기전에서만 9억원 정도의 상금을 벌었다.

4위의 10단전은 히코사카 나오토 (彦坂直人) 9단, 5위의 천원전은 고바야시 고이치 (小林光一) 9단. 6위의 왕좌는 왕리청 (王立誠) 9단이고 7위의 기성 (碁聖) 은 요다 노리모토 (依田基紀) 9단이다.

조치훈과의 도전기에서 인상적인 승부를 펼친 왕리청의 급성장과 조치훈의 라이벌 고바야시의 무관 탈출, 그리고 59세의 노장 구도 노리오 (工藤紀夫) 9단의 활약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킬러 요다는 NEC배에서 조치훈을 꺾고 우승하는 등 3관왕으로 건재를 과시.

▶중국 = 10개의 기전중 22세의 신예 강자 창하오8단이 최대 기전인 러바이스배에서 우승하는 등 3관왕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러바이스배의 우승 상금은 12만위안 (약 1천7백만원) 으로 우리나라 중급대회 규모.

마샤오춘9단도 명인전 10연패를 달성하면서 세계 강자다운 면모를 보이고는 있으나 이번 러바이스배에선 이름도 처음 듣는 신예 양스하이 (楊士海) 8단에게 도전권을 넘겨줬고 NEC배에서도 저우허양 (周鶴洋) 7단에게 패해 의외로 고전 중이다.

양스하이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듯 등장한 강자라면 신예 강호 치우쥔 (邱峻) 4단은 일찍부터 각광받고 있는 중국의 기대주.

▶국제 기전 = 이창호9단이 동양증권배 우승에 이어 창하오8단을 꺾고 후지쓰배까지 차지했고 왕리청9단이 유창혁9단을 제치고 LG배를 가져갔다. 삼성화재배는 이창호대 마샤오춘의 결승전을 앞두고 있어 3국의 강자들은 대체로 (조치훈9단을 제외하고) 세계무대에서도 우승.준우승을 나눠가졌다. TV속기는 요다9단 차지.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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