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밝히느니 처벌받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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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에서 기자의 취재원 보호 범위를 놓고 사법기관과 기자가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10일자에 따르면 미 지방법원 토머스 호건 판사는 지난달 20일 취재원을 공개하지 않은 시사 주간지 '타임'의 매트 쿠퍼 기자를 법정모독 혐의로 수감하라고 결정했다.

쿠퍼가 배심원들 앞에서 취재원에 관해 증언하라는 법원의 소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호건 판사는 "국가안보나 범죄와 관련된 사안에 관해선 기자가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법정 증언을 거부할 특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쿠퍼는 곧 연방법원에 항소해 당장 구속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건은 쿠퍼가 증언대에 설 때까지 타임사는 하루 1000달러씩의 벌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쿠퍼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취재원은 백악관 관료다.

발단은 지난해 6월 보수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노박이 이라크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조셉 윌슨 전 나이지리아 대사를 비판한 데서 비롯됐다. 윌슨 전 대사는 "이라크가 나아지리아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주장은 틀렸다"고 공개 반박했기 때문이다. 노박은 한술 더 떠 "고위 관료에게 들었는데 윌슨 전 대사의 부인인 발레리 플레임은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요원"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선 공무원이 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밝히는 것은 최고 10년의 징역형을 살아야 할 정도로 중대한 잘못이다. 윌슨도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데 대한 보복"이라며 반발했다. 이 사건은 '리크(비밀 누설) 게이트'라는 명칭이 붙었고, 부시 행정부에 의해 임명된 특별검사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과정에서 쿠퍼 등 기자 몇 명이 정보 누출 용의자로 떠올랐다. NBC방송국의 저명한 기자인 팀 러서트는 특별검사의 소환을 거부했지만 판사가 명령하자 대배심 증언은 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쿠퍼는 특별검사의 소환이나 판사의 증언명령을 거부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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