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10대의 철부지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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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들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동갑내기로 14살 때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라는 점도 같았다.

96년에 이들은 나란히 공군사관학교 (남) 와 해군사관학교 (여)에 진학해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이들은 결혼할 때까지는 순결을 지키자고 굳게 약속했으나 그 약속은 2000년의 어느 날로 결혼날짜까지 잡은 다음 깨어졌다.

고등학교 졸업반에 오르던 무렵이었다.

여기까지는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별다른 문제점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문제는 남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또 다른 여학생의 유혹에 끌려 관계를 가지면서부터 커지기 시작한다.

그는 뼈아픈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그 사실을 여학생에게 고백하기에 이르고 이들은 '그들의 소중한 관계를 손상시킨' 또 다른 여학생을 살해하기로 합의한다.

어느 날 이들은 그 여학생을 산속으로 유인해 여학생을 둔기로 내리치고 남학생은 도망치는 여학생에게 권총을 두 발 발사해 살해한다.

미국 텍사스주 맨스필드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미국의 전체사회에 큰 파문을 던진 데는 까닭이 있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청소년들 사이에 '결혼 전 순결을 지킨다' 는 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각종 매스컴의 진단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미혼모 문제라든가 에이즈 공포따위도 얼마간 작용했겠지만 도덕규율이 엄격하던 50년대와는 분명히 다른, 성에 대한 10대들 자신의 의식변화라는 것이다.

미국만의현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춘기 청소년들의 성에 관한 무분별한 호기심과 관심이 범죄나 탈선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우선 당사자들이 잘 깨닫고 있다.

'아우성 (아름다운 우리들의 성)' 이라는 한 여성 강사의 강의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은폐된 성' 이 아니라 자유롭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성에 대한 관심인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문제들을 가슴속 깊이 꽁꽁 숨겨놓기만 한다는 데 있다.

여고 3년생이 깊이 사귀어 오던 같은 학년의 남학생을 살해한 엊그제의 사건만 해도 그렇다.

순간적인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툭 터놓고 의논할 상대가 있었더라면 일이 그처럼 커지지는 않았을는지 모른다.

10대들이 성에 관한 문제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은 역시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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