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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 실제 주인공 강칠구 스키점프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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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요즘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많이 오네요. 영화 덕분에 저도 덩달아 스타가 된 것 같아 어리둥절하지만 기분은 좋네요. 스키점프라는 종목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으니까요.”

비인기 종목인 스키점프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공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국가대표’가 개봉 3주가 지난 20일 관객 4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는 국내에 단 네 명뿐인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달 15일엔 영화의 실제 주인공 중 강칠구(25·사진)씨가 독일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컵 국제스키점프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에서처럼 그는 소속팀도, 후원사도 없는 환경 속에서도 선전했다. 18일 새벽 독일에서 귀국한 강씨를 만났다. 갸름한 인상에 훤칠한 키에 운동선수치고는 조금 마른 편이었지만 팔에는 굵은 힘줄이 가득했다. “참으로 오랫만에 시상대에 올라가 봤어요. 어렵게 훈련했는데 하늘이 제 노력을 알아준 것 같아 기쁩니다. 이제 시작이죠.”

영화에서 강칠구(김지석 분)는 소년 가장으로 귀가 안 들리는 할머니, 지적 장애인 남동생(봉구)과 함께 산다. 하지만 실제 강씨는 부모가 생존해 있으며 지적 장애인 동생은 없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데다 후원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해결해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 갔다 와서 두 달 지났을까요. 당시 대학교 4학년(한국체대)이었는데 돈이 떨어져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커다란 인형 탈을 쓰고 아파트 입주 행사장에 나갔죠. 초등학교 급식소에서 배식도 해봤고, 대형마트에서 짐도 운반했어요.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어요.”

다 큰 아들이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차라리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까 생각했어요. 잡념이 많아서인지 그때는 성적도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이것 저것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만 몰두하려면 실업팀에 속해야겠더라고요.”

그러나 현재까지도 그는 소속팀이 없다. 네 명의 국가 대표 중 두 명(최흥철·김현기)만이 실업팀(하이원리조트)에 속해 있을 뿐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동계유니버시아드에 출전하기 위해 소속이 필요해 최근 대구과학대에 입학했다.

강씨는 눈이 많이 내리는 무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키를 탔다. 처음 스키점프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동계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일면서 무주 지역에도 스키점프가 알려졌어요. 중2 때 국내 첫 스키점프 시합이 열려 경험 삼아 출전했는데 스스로 가능성을 많이 느꼈어요.”

고1 때 국가대표가 된 뒤 유럽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성적은 늘 꼴찌였다. 넘어지고 부러지고 부상도 많았다. “한번 다치고 나면 다시 뛰어내릴 때는 무서워서 주춤하게 돼요. 사뿐히 착지해야 하는데 넘어지고 말죠. 그러다 얼굴을 4~5번 다쳤어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위험하지 않아요. 심하게 굴러 떨어지면서 내려와도 멀쩡한 경우가 많아요.”

한국 국가대표 스키점프 대표팀은 2008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단체전 8위,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단체전 은메달, 2003년 타르비시오 동계유니버시아드 단체전 금메달,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우리나라 최초로 스키점프 종목에 출전했던 김흥수씨가 현재 대표팀의 코치다.

대표팀은 영화 제작을 위해 하정우·김지석 등 주연 배우들과 함께 훈련했다. “실제로는 칠구 동생 ‘봉구’역의 이재응씨가 스키점프를 제일 잘해요. 영화에서는 모자라게 나오지만요. 영화 속에서 제 역할을 맡은 배우 김지석씨는 표정이나 성격 등을 잘 소화해 냈어요.”

요즘 강씨의 미니홈피에는 매일 수백 명의 네티즌이 인사 글을 남기고 간다. “이러다 관심이 식으면 어떻게 허전함을 달랠지 걱정되네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스키점프팀이 참 열심히 한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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