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는 분노 발산의 한 형태'반복시 정신과 치료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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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IMF경제한파 이후 자해가 급증하고 있다. 자연 위장사고를 통한 보험금 타내기 범죄가 급증해 내년 1월 출범하는 금육감독원에는 보험사기 전담부서가 정해질 정도. 이번에 전국민을 경악하게 한 슈퍼마켓 주인 鄭씨의 발목절단 사건은 자해 범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대의대 정신과 권준수교수는 "의학적으로 자해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분노 발산의 한 형태로 공격대상이 자기자신이라는 것이 특징" 이라고 설명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3배 많으며 20대가 가장 많다.

예리한 면도칼.칼.유리조각 등으로 손목.팔.허벅지.다리 등을 긋는 경우가 흔하며 얼굴.복부.유방 등을 자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해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자해 당시 분노심.긴장완화.죽고 싶은 마음 등으로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자해를 통해 분이 어느 정도 풀리면서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의 힘든 상황이 주위에 노출돼 동정심도 유발하고 자신을 화나게 한 당사자도 알려지기를 바란다.

물론 이런 생각은 무의식적인 일이라 자기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한다. 자해자들은 대개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주변에 하소연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핀잔을 주거나 '너의 태도를 고쳐라' 는 등의 답변을 받을 때 더욱 궁지에 몰린 느낌을 받으면서 자해를 선택한다.

권교수는 "자신의 분한 심정을 하소연을 할 때 주변에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진심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면 자해를 막을 수 있다" 고 조언한다. 자해행위를 반복하는 경우엔 자해자의 성격이 신경증적.적대감.인격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경우엔 반드시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하다.

이번 鄭씨의 경우는 이런 일반적인 자해와 차이가 난다. 보험금을 노려 자해했을 뿐 아니라 거짓말도 했기 때문. 연세대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鄭씨는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정신의학적으로 볼때 난폭성으로 남을 해친 것과 차이가 없다" 고 말한다.

다만 鄭씨가 굳이 타인을 범행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자신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소심한 성격 등이 작용했을 뿐이라는 것. 울산대의대 정신과 김창윤교수는 "궁지에 몰리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생각이 편협해지면서 한가지 일에 집착하게 돼 자신의 신체 절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자해성 범죄를 막는 길은 전반적인 사회의 도덕성 회복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정신의학자들의 견해. 민교수는 "신체는 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사회의 공동소유" 라고 못박고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성이 높아지지 않는 한 유사한 행위의 재발은 물론 더 심각한 형태의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황세희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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