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 외길 故 이태영 선생님 영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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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개인적으로는 저의 스승이자 한국 여성계의 거성이셨던 이태영 박사님을 보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선생님이 평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법과 인습에 억눌려 우는 한국여성과 평생 같이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 선생님께 붙는 수식어는 '한국 최초' 로서 서울대 법대 최초의 여학생, 최초의 여변호사, 최초의 여성 법학박사, 최초의 여성 법대학장 등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높은 지위와 명예, 권력이나 부 (富) 까지 누릴 수 있는 위치에 계셨지만 선생님은 오히려 그 반대되는 삶을 살아오셨던, 참으로 역설적인 분이셨습니다.

평소 말씀 하신 바대로 일생을 소외되고 억눌린 수많은 한국여성들의 눈물과 함께 하고, 언제나 가장 가난하고 억울하고 불행한 약자를 위해 도와줄 일을 끊임없이 찾아내 이루어 가는 분이셨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 인습이며 비민주적이었던 가족법을 개정하는데 30여년 동안이나 앞장서셨고 그 결과 부부 재산권, 어버이로서 자녀에 대한 권리, 상속분 등 남녀차별을 없애는 많은 결실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작은 자의 고통과 인권을 대변한다고 했던 선생님의 신념대로 선생님은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땀과 눈물과 열정이 오늘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찾아뵙고 의논 드리면 언제든지 귀한 가르침으로 응답해 주셨던 큰 스승이었기에 이제부터 그 가르침과 말씀을 다시는 들을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슬픔이 가슴을 메게 합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생님의 지혜와 가르침이 더욱 절실한 시점입니다.

다시는 선생님을 뵐 수 없다는 것과 한편으로 그토록 염원하셨던 자유민주사회에서 다시 한번 우리 민족과 여성을 위한 횃불을 들지 못하고 떠나신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남겨진 우리들의 몫은 바로 선생님께서 평생에 걸쳐 이루려고 하셨던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여성발전이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매진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정 앞에서 한국의 큰별이 영원히 빛을 발하기 위해 속세를 떠나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네 운명의 별은 네 가슴에 있다' 를 좌우명으로 길고 멀고도 험한 오직 한 길을 헤쳐오신 선생님, 부디 평안히 가옵소서.

윤후정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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