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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발렌티노 31세로 요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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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26년 8월 23일 영화사상 최초의 섹스 심벌로 평가되는 루돌프 발렌티노(1895~1926·사진)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1920년대의 가장 유명한 배우이자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스타였던 그가 죽자 여성 팬들 사이에 집단 히스테리 현상이 발생했다. 뉴욕 시내에는 약 10만의 인파가 발렌티노에게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줄을 섰다. 장례식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치러졌다. 상심한 여성 팬들의 자살 보도가 잇따랐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팬들 때문에 유리창들이 박살났다. 8월 24일은 온종일 폭동 상태였다. 기마경찰 100여 명과 뉴욕 경찰이 질서를 위해 배치됐고, 밀집대형의 경찰들이 조문객들을 진정시켰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발렌티노는 18세 되던 1913년 미국으로 건너가 정원사·접시닦이 등의 일을 하다가 무용수가 되었다. 1918년에는 할리우드로 가서 영화의 단역을 맡다가 ‘묵시록의 4기사’(1921년)에 출연했고,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 1926년까지 주로 낭만적인 영화에 출연했다. 발렌티노와 가깝게 지낸 헤비급 복싱 챔피언 잭 뎀프시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장 사내답고 용감한 남자였다. 여자들은 꿀단지에 빠진 파리들과도 같아서, 그는 어딜 가든 여자들을 떼어낼 수 없었다. 얼마나 사랑스럽고 운 좋은 사내인가.”

1926년 8월 15일 밤 발렌티노는 갑자기 위궤양으로 쓰러졌다. 수술까지 받는 중태였고 합병증까지 있었다. 23일 드디어 별은 떨어지고 말았다. 돌연한 그의 죽음은 영화계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브로드웨이의 장례식장에 누워 있는 그의 시신을 보려고 무려 11블록에 걸쳐 조문객이 모여들었다. 발렌티노가 천국에 도착해 1921년 사망한 이탈리아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의 영접을 받는 광경을 묘사한 합성사진도 등장했다. 해마다 발렌티노의 기일이면 신비스러운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이 붉은 장미를 들고 무덤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발렌티노가 죽기 하루 전인 22일, 하버드대에서 40년간 총장으로 있으면서 이 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끌어올린 찰스 윌리엄 엘리엇(1834~1926)이 타계했다. 그러나 발렌티노 애도 열기에 묻혀 엘리엇의 죽음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교양 있는 시민들은 엘리엇 총장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발렌티노만큼 일어나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여겼지만, 대학 총장과 ‘울트라 수퍼 스타’가 가는 길이 같을 수는 없었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