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의 도쿄에세이]스모선수의 아름다운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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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백50㎏이 넘는 주체할 수 없는 몸매. 고니시키 (小錦)가 스모 (일본씨름) 경기장에 나서면 웃음을 자아냈다.

배의 살이 흘러내려 허벅지까지 닿을 정도였다.

하와이 출신으로 '먹고 살기 위해' 일본 스모계에 입문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죽어라고 체중을 불렸다.

튀어나온 배,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생존을 위한 안간힘의 상징이었다.

그가 가장 높이 오른 곳은 서열 두번째인 오제키 (大關) .대망의 요코즈나에는 결국 오르지 못했다.

고니시키는 말년에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나 매번 우스꽝스럽게 모래판에 쓰러지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나 경기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는 일본 관중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거구에 걸맞지 않게 재치있는 유머를 구사하고 하와이 피를 이어받은 낙천적인 성격도 좋은 인상을 풍겼다.

그의 황금기는 오히려 올 봄 스모에서 은퇴한 뒤 찾아왔다.

그는 요즘 소니.승용차 등 4개의 TV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산토리 술 광고에서는 코믹한 연기로 시선을 끌고 있다.

고니시키의 다이어트 '성과' 는 매주 일본 방송들이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

그는 "스모에서 벗어났으니 이제 보통사람이 되겠다" 고 선언하고 벌써 몸무게를 70㎏ 이상 감량했다.

자메이카 등 해외를 돌아다니며 가난하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특집방송의 리포터로도 활약중이다.

고니시키의 말에는 체험에서 우러난 철학이 담겨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

"추운 겨울일수록 나무는 깊은 뿌리를 내리지. 그래야 돌아오는 봄에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단다. "

가난한 하와이 원주민 출신으로 힘겨운 인생을 이어온 고니시키가 한 말이기에 불황과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일본 시청자들도 감동을 받는 것 같다.

이철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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