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한국방송]3.베끼기는 설땅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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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지난 10~12일 열린 싱가포르 국제 TV프로그램 시장에서 대형 부스를 세워 시선을 모은 일본 TBS.그들이 만든 1백5쪽 팸플릿의 1면을 장식한 것은 애니메이션도 드라마도 아니었다.

바로 얼마전 SBS '특명 아빠의 도전' 에 로열티를 요구해 온 게임쇼 '행운의 가족계획' 이었다.

덴마크의 DR TV 또한 청소년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쇼 포맷을 전략 상품으로 내놨다.

세계 방송들이 눈독을 들이며 달려드는 장르가 바로 쇼 포맷이다.

오락 프로의 형식을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는 포맷 판매는 방송이 나가는 동안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황금알 낳는 거위' 로 떠오르고 있다.

올 들어 태국 등 아시아 프로덕션들도 포맷 판매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시청률 톱10에 오르내리는 오락 프로도 시장에 내놓지 못했다.

표절 때문이다.

국내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드라마도 척척 팔리는데, 비싼 돈 들여 만든 오락프로를 국내에서만 '숨겨놓고' 봐야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는 것. 이번 전시회에서 KBS가 스페인 프로덕션에 'TV는 사랑을 싣고' 포맷 판매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날아왔지만 개운치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 프로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표절 시비 때문이다.

만약 KBS의 주장대로 일본에서 우리 것을 베꼈다면 우리도 일본 방송사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 방송 중단이나 로열티를 요구해야 한다.

이 문제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수출한다면 두고두고 말썽이 생길 여지가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김창열 방송위원장은 "표절을 막기 위해 재외 공관을 통해 외국 프로를 입수하는 방안을 고려중" 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표절은 이제 우리의 양심 차원이 아니라 프로그램 수출을 가로막는 직접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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