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문점 의혹 말끔히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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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방부는 김훈 (金勳) 중위의 죽음과 경비병들의 대북 (對北) 접촉 등 이른바 '판문점 미스터리' 를 재조사하는 합동조사단에 변호사.법의학교수 등 객관적 입장의 민간전문가도 포함시킬 방침이라고 한다.

여권은 이례적으로 야당과 함께 국정조사도 실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의혹을 풀어보겠다는 의지를 어느 정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당정은 이런 장담에 그치지 말고 철저한 실천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어느 사회나 의혹은 끊임없이 피어난다.

사회의 건강도와 성숙성은 그 의혹을 해소하고 진실을 세우는 수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실규명이 명확하다면 의혹은 오히려 결과적으로 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나 방법이 미숙해 시간만 질질 끌고 모양새만 갖추려 하면 의혹은 확대재생산되고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고질화된다.

한국 사회에는 '의혹후유증' 이란 증세가 있다.

의혹이 잔뜩 부풀려지기만 하지 진상이 신속하게 드러나지 않아 혼돈의 증세가 지속되는 것이다.

세풍.총풍도 그런 부분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재수사는 진실규명에 관한 한국 사회의 성숙도와 노하우를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 군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모든 의문점에 답하는 방향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지난 1, 2차 조사에서 다 드러났는데 괜히…" 라는 선입관을 갖고 형식만 종합적으로 꾸며 그냥 한번 수사를 하는 정도에 그친다면 사회적 손실은 오히려 사건 자체보다 클 수가 있다.

지금 유가족과 언론.시민단체에서는 사건에 대해 수많은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김영훈중사가 북측 초소까지 다녀왔다는데 군은 그의 대북접촉을 어떻게 1년 넘도록 몰랐는가.

귀순한 북한군 변용관상위는 북한과 접촉한 한국측 사병들을 여럿 거론하면서 가장 접촉이 빈번했던 金중사는 왜 빼놓았나. 金중위의 죽음이 자살이라는데 도대체 자살할만한 사정은 뭔가.

북한이 한국측 경비병에게 롤렉스시계를 주었다는데 진짜인가 가짜인가.

진짜라면 대가는 무엇인가.

자기 권총을 놔두고 金중위는 왜 남의 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야가 국정조사에 의견을 모았다는데 이번에 국방위소위가 문제를 부각시킨 것을 보면 국회 조사에 기대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의 순서상 이는 합동조사단의 재조사가 완결된 뒤에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고 순서가 뒤죽박죽된다면 합동재조사의 효력만 떨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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