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바예바 벽 넘은 로고프스카 “내가 우승했다는 게 나도 놀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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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나 로고프스카(28·폴란드)는 2005년 7월 런던 그랑프리에서 4m80㎝를 뛰어넘고 우승을 확신했다. 하지만 몇 분 뒤 그는 여자선수로는 최초로 5m를 넘는 옐레나 이신바예바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한걸음씩 정상을 향해 내디뎠지만 성큼성큼 달아나는 이신바예바는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보였다. 이신바예바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4m91㎝)을 쓰며 우승했을 때도 그는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테네 올림픽을 거치면서 모니카 피렉을 제치고 폴란드 에이스로 올라선 그는 2005년 8월 최고 기록인 4m83㎝를 세우며 승승장구했지만 이후 슬럼프에 빠지며 주춤했다.

로고프스카의 자신감을 일깨운 곳은 공교롭게도 좌절의 쓰라림을 맛봤던 런던이었다. 지난달 말 런던 그랑프리에서 그는 이신바예바를 제치고 우승을 거뒀다. 비록 4m68㎝로 동률을 이뤄 후반 성적이 좋은 선수가 승리하는 ‘카운트백’ 규정에 따른 것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탄력을 받은 그는 이번 대회까지 제패하며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이신바예바의 벽을 넘었다. 로고프스카는 100m허들 선수로 활약하다 장대높이뛰기로 전향했다. 스피드와 도약력이 필수라는 점에서 두 종목은 사촌 간으로 불린다.

마치 스피드가 생명인 단거리와 멀리뛰기의 관계처럼 말이다. 로고프스카는 현재 코치인 자첵 코르린스키와는 부부 사이다. 로고프스카는 “이신바예바가 바를 떨어뜨렸을 때 모든 사람이 놀랐을 것이다”며 “내가 우승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랍다. 아마 내일이 돼야 기쁨을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베를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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