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9개월 추적 김훈중위 아버지 김척 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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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열달 가까이 안장도 못한 채 군부대 창고에 누워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피눈물이 납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참군인이 되겠다던 굳은 맹세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한데…. "

지난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내 지하벙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훈 (金勳.25.육사 52기) 중위의 아버지 김척 (金拓.55.육사 21기) 예비역 중장.

지난해 11월 3군 부사령관을 마지막으로 군을 떠났던 그는 아들이 소속했던 부대의 부하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북한측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8일 "이제야 아들의 사망원인을 밝힐 수 있게 됐다" 며 흥분된 모습이었다. "사고현장에 대한 조사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아들이 자살했을 리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그러나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

사인을 밝히기 위해 아들이 소속했던 부대원들을 찾아나선 것만 해도 수십차례. 부대원들의 손을 부여잡고 부탁과 읍소를 거듭한 끝에 굳게 닫혔던 말문을 열게 했다.

"아들의 사망원인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간청 덕분인지 싸늘히 돌아서던 부대원들도 끝내 '소대장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더군요. " 金씨는 부대원들을 설득하는 한편 방대한 자료를 수집,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이라는 군측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해 나갔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만 해도 라면박스 10개가 넘는 방대한 분량. 金씨는 스스로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자료를 정리.분석하는 한편 수소문 끝에 미국내에서 법의학 전문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루이스 노 (56.한국명 魯麗洙) 박사와 접촉, 타살임이 틀림없다는 의학적 소견도 받아냈다.

지난 9월에는 사재를 털어 魯박사를 한국으로 초청, 군 수사기관과 대질신문까지 이뤄낸 것도 아들의 사망원인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부정 (父情) 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는 아들의 절규를 듣고 꿈을 깬 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아들의 사망원인을 밝혀내고 명예를 회복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

金씨는 또 '이번 기회에 군에서 발생한 의문사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도 다시 이뤄지길 바란다' 며 말을 맺었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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