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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고리대금업'서술한 르 고프 '돈과 구원'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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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 조금 불편할 뿐' 이라 한다. 하지만 결국엔 돈이 화근이다. 그것으로 고통을 앓는 사람, 그 반대편 고리대금업자의 사정은 어떨까. 프랑스 사학자 자크 르 고프 (74. '아날' 지 공동편집인.중세전공) 의 '돈과 구원' (김정희 옮김.이학사.7천원)에는 이런 말들이 줄을 잇는다.

"황금을 좋아하는 자는 의로울 수 없고 그것을 좇는 자는 속속들이 썩는다. " "마태오는 예수를 따라 나서며 경고한다.

아무도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고리대금업은 악이다/인류와 그 너머를 모독하는/뱀/그 유명한 이름의 모독자. " "악마가 쓰는 첫번째 술수는 죽어가는 고리대금업자가 실어증에 걸리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급사. " "뱀들이 떠나간 자리, 불빛 아래는 오직 고리대금업자의 백골만 남아 있다. " "고리대금업자 하인의 이름은 지옥, 하녀의 그것은 죽음이다. " 르 고프가 묘사하는 11~12세기 중세 유럽의 고리대금업은 오직 하느님에게 속한 시간을 훔치는 행위, 그 업자는 치명적 죄인이다.

"빌려 준 돈에 대한 대가로 더 많이 돌려 받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인가. " 저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대답을 옮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매매함으로써 불평등을 창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당하다. " 책은 구약.신약성서와 시인.역사가.경제학자의 말.예화 (例話) 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부분을 채운다. 하지만 13세기 들어 중세교회는 그들을 위해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 (푸르가토리움) 을 만들어 구원의 길을 열어준다.

명분은 '상환 지체에 따른 손실' 과 '채무자의 투자이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고리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연옥은 '자본주의의 자궁' 이다.

교회가 고리대금업자를 지옥으로부터 구출함에 따라 '돈 = 죄악' 의 연결고리는 '고리대금업자 = 은행가' 의 구도로 바뀌고 만다.

더욱이 연옥에는 천국으로 가는 출구 하나뿐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서 '돈 = 선' 인 자본의 논리까지 나온다.

이 책에선 역사의 중심에 인간의 일상사를 배치시키려는 아날학파적 관점과 서술도 흥미롭게 다가선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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