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코드] 3. 문학의 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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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히사를리크 언덕에 서니 당황스럽다. 언덕 주변은 온통 푸른빛으로 덮인 들판뿐이고 바다는 멀리 가물가물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이 정말 3000여년 전 그리스군이 대선단을 해안에 대고 전쟁을 벌였던 트로이인가.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성벽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세 바퀴씩이나 돌던 옛 트로이의 성벽이란 말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고대 지질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히사를리크 언덕 앞의 들판이 옛날에는 바다였음을 밝혔다. 언덕을 둘러싼 강들이 심술을 부려 지난 3000년 동안 바다를 본래 해안에서부터 10㎞ 밖으로 내쫓았다는 것이다.

▶ 트로이는 서로 다른 시대의 9개 도시 유적이 중첩돼 있어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한 난해한 곳이지만 해마다 5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호메로스의 노래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다. 트로이=안성식 기자

▶ 트로이 유적지에는 목마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 복수심에 불타는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의 가장 고귀한 전사 헥토르에게 돌진하는 모습. [타임라이프북스 제공]

산천마저 모습을 완전히 바꾼 이 언덕에서 우리들은 왜 아직도 트로이 전쟁의 전설을 찾아 헤매는 걸까. 아무도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른다.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전쟁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호메로스가 그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그 전쟁에 대해 노래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이 언덕을 찾아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참배하며,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해 줄 호메로스 같은 대시인이 없음을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끝 무렵에 지금 터키반도의 서해안 지역인 이오니아 지방을 무대로 활동하던 음유시인이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두편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효시다. 그리스군의 트로이 원정으로 시작된 10년 전쟁 중 마지막 50일 동안의 공방전을 다루고 있는 '일리아스'는 1만5693행, 24권으로 이뤄져 있고,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영웅 오디세우스가 겪은 10년 동안의 표류와 귀향 이후의 모험을 그린 '오디세이아'는 1만2110행, 24권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위대함은 이 방대한 분량에 있지 않다. 오히려 후대의 독자들은 그가 그려낸 영웅들의 생생한 성격과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에 감탄한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한결같이 용감하고 자기희생적이며 애국심에 불타는가 하면 가정에 충실하고 우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동시에 그 영웅들은 성미가 급하고 때로 몹시 잔인하고 질투가 많으며 기회만 주어진다면 살인이나 약탈도 주저하지 않는다. 여인을 겁탈하거나 납치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상대방을 속이는 일에도 망설임이 없다.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전사일 뿐 결코 윤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다.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죽음도, 운명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명예심이 강한 이들은 조그마한 모욕이나 수치도 참지 못한다.

이런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아킬레우스다. 그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평온하게 오래 살 수 있지만 전쟁에 나가게 되면 영원한 명예와 명성을 얻는 대신 요절할 운명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복수를 부르짖으며 전쟁터에 나갈 결심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상관하지 않았다. 우정이 죽음보다 더 중요했던 까닭이다. 고귀한 정신이다.

한편 그는 조그마한 모욕과 수치도 참지 못하고 곧바로 토라지는 속 좁은 면도 가지고 있다. 아가멤논이 총사령관이란 직위를 내세워 전리품으로 얻은 노예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가자 자존심이 상한 아킬레우스는 참전을 거부한다. 이 분노는 아군이 수없이 죽어가도 변하지 않는다. 그 고집이 꺾인 것은 자신이 사랑하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었을 때다.

그는 또 야만스럽고 잔혹하다. 다른 영웅들과 어울려 주변 도시를 약탈해 브리세이스를 비롯한 여인들을 납치하는가 하면 헥토르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시신을 부모에게 돌려주라고 애원할 때 이를 매정하게 거절한 뒤 시체를 발가벗겨 전차 뒤에 끌고다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다정다감한 젊은이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숙소까지 찾아와 아들 헥토르의 시체를 되돌려 달라고 애원할 때 아킬레우스는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프리아모스의 손을 마주 쥔 채 함께 통곡한다. 그리고 프리아모스를 동정해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고 그의 안전까지 보장한다.

이율배반적으로 보이는 아킬레우스의 이런 복잡한 성격은 그 뒤 서양 영웅의 영원한 원형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우리 앞에 되풀이돼 나타난다.

꾀 많은 오디세우스의 원형도 서양 문학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 할리우드는 영화 '스팅'이나 '멋쟁이 도둑'처럼 감탄할 정도의 도둑 기술과 사기 수법을 가진 주인공들이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어리석게 욕심을 부리는 어수룩한 졸부들이나 악당을 골려 주는 영화를 심심치 않게 만든다. 그런 영화를 보며 대리만족에 빠져 통쾌함을 느끼는 현대 관객들은 모두 오디세우스의 후예인 셈이다.

호메로스 이전의 민담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마법과 우연에 따라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었다. 운명에 맞서 싸우다가 비장하게 죽어가는 자유 의지를 가진 영웅들, 자신의 재주와 기지로 운명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영웅들, 호메로스는 처음으로 이런 뚜렷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고대 이후 서양의 시인들과 작가들은 호메로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서양 문학의 뿌리다. 동시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후대 작가가 뛰어넘어야 하는 거대한 장벽이다.

트로이=글 유재원(외국어대)교수,사진 안성식 기자

*** 호메로스.트로이전쟁 과연 실재했었나

집단창작설 등 끝없는 논란

▶ 호메로스

호메로스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세 가지다. 우선 호메로스가 실제 인물인가 아니면 전설 속의 허구적 인물인가 하는 문제. 여기엔 호메로스가 과연 한명의 작가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어떤 음유 시인 집단을 가리키는가 하는 논란과 그가 실제 인물이라면 어느 시기에 어디에서 활동했는가 하는 논쟁이 포함된다. 지금은 호메로스를 집단이 아닌 기원전 8세기 말에 활동한 실제 인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둘째는 과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한 시인에 의해 쓰였는가, 아니면 두 시가 각기 다른 시인에 의해 쓰였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해선 아직 의견 일치를 이루고 있지 못하지만 두 작품이 충분히 한 사람의 손에 의해 기록될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셋째 문제는 트로이 전쟁이 과연 실제로 일어났던 전쟁인가 아니면 작가의 순수한 상상의 산물인가, 또 이 전쟁이 역사적 근거가 있다면 어느 시대에 일어났는가 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 전쟁이 기원전 1250년께 실제로 있었던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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