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외통부 통상정책 손발 안맞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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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각종 통상현안에 대한 정부 내부의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한.미 투자협정' 등 시급한 통상현안을 놓고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가 서로 생각이 달라 정부정책의 혼선은 물론 협상 자체가 난항이다.

재경부는 "미국측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 정부가 비상시에 외환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제도가 유명무실해지는가 하면,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미국 기업에 비해 심각한 불평 등을 감수해야 하는 등 문제가 많다" 는 입장이다.

반면 외교부는 "외국인 투자의 적극적인 유치를위해 한.미투자협정을 우리가 먼저 미측에 먼저 제의한 만큼 각종 투자 제한규정 등 걸림돌을 대폭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부처간 의견해소를 위한 협의채널 확보와 청와대 등에서의 확실한 정책조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세이프가드 도입 논란 = 세이프가드는 우리 정부가 내년 4월부터 외환시장을 대폭 개방하면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법에 명시해 놓은 제도로 외환위기 발생 때 외국 자본에 대해 외국환평형기금 등에 일정액을 예치토록 하거나 (가변예치의무제) 세금을 물리는(토빈세)게 주요 내용이다.

미측은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 기업과 투자자에 대해 이 제도와 상관없이 외화반출을 전면 자유화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재경부는 이에 대해 "미국 자본에 예외를 인정해줄 경우 '최혜국대우 (MFN)'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다" 며 "만약 '제2의 외환위기' 로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태가 또다시 발생한다 해도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있어야 한다" 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외교부는 "불을 막는 스프링클러 (세이프가드)가 없다 해서 화재의 발생을 막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며 "외화가 빠져나가는 '가상현실' 의 경우를 상정해 미국 자본의 자유로운 대한(對韓) 투자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며 맞서고 있다.

◇ 시장 개방노선의 혼선 =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가 역내 국가를 상대로 임.수산물 등 9개 분야에 대해 시장자유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부처간 이견이 여전히 해소되지않고 있다.

외교부는 "적극적인 개방노선을 천명한 이상 역내 자유화를 주도해야 한다" 는 입장인 반면 재경부등은 "타 회원국보다 먼저 개방폭을 넓힐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며 신중한 모습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협상 조기타결을 통해 우리 스스로 적극적인 개방노선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외국 자본을 많이 끌어들이는 것이 위기극복의 지름길"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경부 등은 "외교부가 각종 대외협상에서 지나치게 타결 일변도의 '성과주의' 에 급급해 오히려 국익(國益)을 해치고 있다" 고 비판하고 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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