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회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회사를 가리키는 영어 company에는 의미심장한 어원이 있다. 앞부분의 com은 '함께'라는 뜻이다. 뒷부분의 pan은 라틴어로 빵을 뜻하는 panis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원래의 뜻은 '함께 빵을 먹는다'가 된다. 같이 먹고 살자며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 바로 회사라는 의미다. 이 말이 서양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4세기 초 길드 조직에서라고 한다. 문헌상으론 16세기 중반에야 등장했다.

company를 '회사'라고 번역한 것은 19세기 말 일본인들이었다. 메이지(明治)시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때였다. 물론 회사라는 말이 처음부터 company의 번역어로 쉽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다.

당시 일본인들이 마땅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영어 단어 중에는 society가 있었다. 서구적 개념의 society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 말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회'다. 한자로 '社'는 토지신, '會'는 모인다는 뜻이다. 과거 중국에서 '서후이(社會)'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토지신에게 제사 지내며 축제를 벌이는 것을 의미했다. 서양의 society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일본에선 처음엔 중국의 '서후이'와 헷갈리지 않도록 society를 '인간회사'로 번역하기도 했다. 일시적으론 회사나 사회를 모두 society의 의미로 사용하는 혼란도 겪었던 것이다. 확실한 경위는 불분명하지만 최종적으론 '사회'가 society의 번역어로 정착됐다. 그러자 중국도 이를 따르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society가 일단 '사회'로 번역되자 company의 번역어는 자연스럽게 '회사'로 정해졌다. 모인다, 행사(제례)를 치른다는 한자의 뜻이 company의 어원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나 회사는 모두 일본말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요즘 일부 회사의 노사 관계를 보면 '회사(company)'라는 본뜻의 틀을 크게 벗어나 있는 모습이다. 노조원이 회장을 처형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사측은 대량해고도 서슴지 않겠다는 태도다. 일단 파국을 피하긴 했지만 이래서는 화기애애하게 함께 먹고 살 분위기가 아니다. 그럼 '회사' 아닌 다른 이름을 새로 만들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